■ 무서운 병 ‘마마’ 3편
■ 무서운 병 ‘마마’ 3편
특별한 치료약이 없기도 하지만, 약을 써서 내쫓으려는 불경한 짓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마마떡을 만들어 마마신에게 올린 뒤 환자에게 먹이면서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또한 마마에 걸린 어린 아이는 마마님이 의탁한 몸이므로 그 집안의 가장 존귀한 분으로 떠 받들어 모셔야 했다.
환자에게는 공손하게 존댓말을 써야 했으며 환자의 말은 지상명령이었다. 이때는 마치 집안에 무서운 어른이 계신 것처럼 떠들썩한 것, 즐거운 것, 화려한 것, 부정한 것 등이 모두 금지되었다. 술과 생선, 고기를 먹지 말고, 청소하지 말고, 머리를 빗지 말고, 새 옷도 입지 말고, 상중에 있는 사람을 만나지도 말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기사항들이 있었다.
왕실이라고 민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세종의 동생 성녕대군도 마마를 앓다가 14살에 죽었고,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도 마마로 죽었다. 선조는 불과 한 달 만에 마마로 손자, 아들, 딸을 줄줄이 잃었다. 왕실에 마마환자가 생기면 왕도 술과 고기를 먹지 못하고 반찬도 줄여 김치로 수라를 때워야 했다. 더군다나 중요하지 않은 왕릉행차나 제사는 생략했다. 마마신에 대한 공포는 환자가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두창 환자가 죽은 것은 마마신이 노했기 때문인데, 죽은 사람을 땅에 묻으면 마마신이 더욱 노하여 남은 아이들마저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에 묻지도 못하고 들판에 버리거나 나무에 붙들어 매어두거나 임시로 초분(草墳)에 두어 썩은 뒤에 매장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난리를 치르고 나서 마마가 끝나갈 즈음에는 마마 신을 보내는 배송굿을 벌였다. 확실히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다. 속담에도 ‘마마손님 배송하듯’ 이란 말이 있는데 귀찮은 손님이 찾아왔을 때 말썽 부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잘 대접하여 얼른 떠나게 한다는 뜻이다.
지금 중장년층까지만 해도 대개 어깨 쪽에 우두자국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른 주사와는 달리 우두에만 커다랗게 얽은 자국이 생기는 것은 바늘로 찔러 약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째서 상처를 내어 우두균을 접촉시키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자 우두자국이 보기 흉하다 하여 발바닥에 우두를 맞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발바닥 우두접종은 곧 사라졌다. 1979년에 천연두 바이러스의 멸종이 세계에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사회는 일정지역에 국한된 질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전세계로 날아다니고 있고, 계속 변이되면서 현대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하나뿐인 지구와 그 환경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지 않은 천벌이라고 여길 만큼 지난하고 가혹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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