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6일 토요일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2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2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2편

『원이 아버지에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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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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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현대어 각색편)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후략)』(원본편)

이 원본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존재한다. <원이엄마 편지>에는 ‘자내’라는 단어가 총 14번 등장한다. 원이엄마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내’를 사용한 것이다. 16세기 조선시대,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서로를 ‘자내’라고 부를 정도로 평등했던 것일까? 아니면 원이엄마가 틀을 깨고 쓴 것일까? 사실 ‘자내’라는 단어는 현재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자네)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적어도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 편지를 통해 과거의 ‘자내’와 현대의 ‘자네’는 다르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