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3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3편
남편을 향한 원이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시신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미투리’이다. 미투리는 길이 23cm, 볼 9cm이며 뒤꿈치 부분은 한지로 감겨있었다. 미투리는 보통 삼으로 만들기에 황토색을 띠는데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미투리에는 검은색이 섞여 있다. 검은색 실 같은 것으로 만든 미투리. 과연 검은색 실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2년, 한 국내 방송사에서 검은색 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한 연구소에 실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검은색 실은 머리카락, 수백여 년 전 사람의 머리카락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머리카락은 원이엄마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투리를 싸고 있던 한지에 ‘내 머리 배혀’, ‘이 신 신어 보지’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에서 남편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그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부부의 사랑은 현대의 부부들과는 다르다. 현대인 중 누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머리카락 베어 미투리를 삼아주겠는가? 이것은 조선시대의 문화를 염두에 두더라도 매우 특수한 경우였다. 《효경(孝經)》의 첫 장에,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떤 경우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선시대에 자신의 효나 열을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빈번하게 장려되기도 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효 사례들 가운데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와 허벅지 살을 베는 \할고(割股)\를 자주 볼 수 있다.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위해 다리 살을 베고, 아들이 아버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다.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는 것이 지극한 정성의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분위기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한 올 한 올 신을 삼는 행위 자체는 이미 정성을 담은 행위다. 게다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손상시키면서 만든 신이니 그 정성이야 더할 나위가 없다. 신은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발을 땅에 붙이고 걷게 하는 것이기에 현실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을 잃어버리는 꿈은 현실적 판단력을 기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인간 정체성의 지표이기도 하다.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갈 때 가죽신을 신고 가는데 이를 통해 그가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우리나라에서 짚신은 길을 가는 사람의 여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원이 엄마는 남편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이 미투리를 삼았다. 병상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에게 신은 바깥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건강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신을 끝내 신어보지 못하고 죽는다. 머리카락으로 삼은 신과 그것을 신지 못한 채 맞은 죽음은 원이 엄마의 지극한 정성, 그럼에도 좌절된 소망을 보여준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