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균과 칠천량해전 6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6편
통제사 원균의 실책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휘하에서 성장해온, 여러 장수들을 배척하였다는 점이다. 장수가 부하의 말에 귀를 닫고 군영의 일보다 다른 곳에 정신이 가 있고, 부하를 배척하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장수와 병사 사이가 벌어지고 서로를 알지 못하게 되며, 군영의 사기가 떨어지고, 군기가 해이해진다.
충무공 이순신이 있을 때의 상승 무적 조선 수군의 모습을 신임 통제사 원균은 빠른 속도로 바꿔가고 있었다. 정사준, 배흥립 같은 장수들이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한산도 통제영의 상황을 전하며 크게 우려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에서 통제영의 장병들이 느꼈을 불안과 우려를 알 수 있다.
이로써 삼도 수군은 일시에 무너지고 적군은 남해 일원의 제해권을 장악해 서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우키타(宇喜多秀家)·고니시(小西行長)·모리(毛利秀元) 등은 쉽게 남원 및 진주 등지로 침범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7월 21일 원균과 함께 탈출하다가 원균은 죽고 겨우 살아 나온 김식에게서 패전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 백의종군(白衣從軍)하고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하였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 책임이 전적으로 원릉군 원균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어쨌든 전장의 지휘를 맡은 사람은 원균이니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지만, 원균 외에도 도망간 장수들, 무모한 전투를 몰아댄 선조와 조정 대신들 그리고 도원수 권율 장군의 책임도 있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수군이 계속 이겨왔다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적을 경시하고 있었다.
우리 수군의 모습만 보이면 적은 스스로 물러나고, 수군이 나아가면 무조건 이기고 적을 깨뜨리고 성을 빼앗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순신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병법도 모르고, 현지 사정도 어두운 분들이 군권과 군령에 간섭하여 지휘체계를 뒤흔들었고,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제대로 검토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고 모함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했다.
통제사 이순신장군이 조정의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자급자족으로 근근히 버티면서 수군 전력 강화를 위해 애썼다.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후방에서 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해주어야 할 병참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수군의 활약을 너무 당연시하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한 일은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싸우라고 강요한 것이다.
애초에 이순신장군을 통제사에서 파직한 것부터가 잘못된 인사이고, 후임 통제사에 장수로서 기본도 안 된 원균을 내세운 것도 잘못된 인사이다. 선조의 정치적 입장과 관련하여 무조건적으로 싸고 도는 상황 때문에 원균의 역량과 사람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선조와 조정 대신들. 이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원균보다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