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령왕릉 6편
■ 무령왕릉 6편
무령왕릉은 발굴 직후 한동안 폐쇄됐다가 유물을 모두 수습한 뒤 빈 고분은 송산리 고분군 5, 6호와 함께 일반 관광객에게 1976년 2월부터 공개되었다. 당시 무덤 입구를 거쳐 무덤방까지 관람객들이 들어가서 무덤방 입구에 설치된 유리창 너머로 안쪽을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문제가, 무령왕릉의 봉분은 이미 허물어져 있어 얼마나 컸는지 원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재단장과 공개 과정에서 마치 신라 왕릉처럼 봉분을 거대하게 쌓아버렸다. 혹시나 백제 왕릉이 신라 왕릉만큼 웅장해야 한다는 근거없는 경쟁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무덤방 위에 지나치게 거대하게 봉분을 쌓고, 무게중심도 무덤방 중심 부분에서 서북쪽으로 기울어진 곳으로 쌓다보니 봉분 무게 때문에 왕릉 무덤방이 찌그러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1989년에는 무덤방 벽면과 그 앞에 관람객 차단 유리벽에 물기가 맺히고 곰팡이가 피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어 1997년에도 왕릉이 기울고 물이 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때문인지, 1998년 5~12월에 공주시의 의뢰를 받아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 고분군의 보수 상태를 점검했는데, 이 때 무령왕릉은 내부에 금이 가고 봉분 내부로 물이 스며들고 있다고 진단받아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결국 발굴 26년째인 1997년 7월 15일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 고분군 5, 6호분의 석실들은 관람목적의 개방이 전면 금지되었다. 당시에는 1년간 한시적 폐쇄였지만 이후 지금까지도 다시 일반 관광객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을 2003년 만들어 관광객들이 대신 내부 구조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무령왕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무령왕릉실’을 ‘웅진백제실’로 개편하면서 무령왕과 왕비의 실제 목관을 2017년에 46년 만에 최초로 공개했다.
무령왕릉을 두고 건축이나 문화사와 고고학적인 면에서도 많은 이들이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최고의 가치는 세계로 열린 개방성 그리고 많은 문화를 하나로 묶어서 품어내는 포용성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우리의 것을 만들어 낸 독창성이라고 하겠다. 무령왕릉 속에 한, 중, 일 세 나라의 문화와 문물이 모두 녹아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령왕릉에는 우리의 토착신앙, 불교, 도교 문화도 함께 녹아들어 있어 정신문화를 한데 아우르는 결정체라 할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