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6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6편
평저(平底)형의 판옥선은 물에 닿는 면적이 넓어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적이었다. 한반도 서해·남해처럼 수심이 낮고 조수차가 큰 바다에서 항해가 용이하다. 전투 중 필요하면 제자리에서 360° 급선회도 가능했다. 조선 수군의 강점인 화포를 쓰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화포 발사에 따른 반동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평저선의 장점이었다. 반면 세키부네는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尖底船)이었다. 선체 바닥이 V자 형태로 좁다 보니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속력이 빨랐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 운용하거나 해협을 건너기에 유리했다. 다만 회전 반경이 커 방향 전환이 어려웠다. 조수 차가 크고 파도가 세게 치는 바다에서는 판옥선보다 기동하는 것이 불리했다.
두 나라 배의 돛도 달랐다. 조선과 일본의 군선은 기본적으로 노와 돛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바람을 이용한 장거리 항해를 할 때는 돛을 이용했다. 전투에 돌입해 섬세한 기동이 필요하면 격군이 노를 저어 움직였다. 돛 하나로 움직이는 외돛배인 일본 군선은 순풍만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판옥선은 쌍돛대를 달아 역풍이 불어도 갈지(之)자 모양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판옥선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며 섬·암초가 많은 조선 해역에 최적화된 배였으므로 우리 해역에서는 절대 질 수 없는 무적함이었던 것이다.
판옥선의 전투력을 극대화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은 화포(火砲)였다. 조선은 고려 말의 화포 제작·운용 기술을 계승해 발전시켰다. 크고 튼튼한 선체가 장점인 판옥선은 포 발사에 따른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천자총통(天字銃筒)·지자총통(地字銃筒) 등 다양한 화포 약 24문을 탑재했다. 전투원은 개인 화기인 승자총통(勝字銃筒)과 활로 무장했다. 반면 일본 수군의 세키부네는 크기가 너무 작아 선상에 화포를 거의 탑재할 수 없었다. 아타케부네에 장착한 화포를 시험 발사하자 선체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된 일도 있었다. 결국 화포 3문 정도를 설치하는 것이 한계였다.
양국 수군의 무기체계가 다르므로 전술에도 그 차이가 그대로 반영됐다. 일본은 적함에 빠르게 접근해 조총을 쏘거나, 갈고리 달린 밧줄을 상대방 배에 걸고 올라타 백병전(白兵戰)을 치렀다. 일명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이다. 조선 수군은 굳이 적함에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군 조총 사거리(100m)보다 멀리 떨어져 포를 발사할 수 있었고, 추격을 피해 도망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90° 회전해 현측(舷側·배의 좌우 측면)의 포를 발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수심이 얕은 곳으로 유인해 일본 군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일본 군선은 함상(艦上) 백병전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하다 화포 세례에 침몰하거나 좌초하기 일쑤였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