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5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5편
판옥선의 주재료는 단단하고 두꺼운 소나무 판재였으므로 강도와 내구성이 높다.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은 속도는 느렸지만 대형 화포를 다량 적재해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목재를 결합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여러 장의 얇은 판재를 겹치는 데 쇠못을 이용했지만, 조선은 나무못으로 두툼한 소나무 판재를 이어 붙여 배를 만들었다. 조선 특유의 군선 건조 방식이 잠시 달라진 적도 있었다. 1430년(세종 12년) 조정은 나무못을 사용하던 기존 선박 건조 방식을 바꿀지 검토했다. 일부 신료가 일본 배는 여러 장의 판재를 쇠못으로 결합해 튼튼하면서도 가볍지만, 조선의 군선은 단일 판재와 나무못을 사용하면 내구성이 낮아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종 때 얇은 판재 여러 장을 쇠못과 나무못으로 결속해 만든 군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군선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내구력은 낮아졌다. 이런 문제점을 간파해 전통적 군선 건조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인물이 바로 신숙주였다.
1473년(성종 4년) 신숙주는 “왜선을 관찰하니 판자가 얇고 쇠못을 많이 썼다. 왕래하는데 경쾌하고 편하지만 배가 요동치면 못 구멍이 차츰 넓어져 물이 새기 때문에 배가 쉽게 썩는다”며 일본식 군선의 약점을 지적했다. 신숙주는 1443년(세종 25년) 서장관으로서 일본을 직접 방문해 현지 사회상을 관찰해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 그는 “일본에서 갑자기 해적의 기습을 받았으나 (타고 있던 조선식 배의) 돛을 달고 항해해 곧 따돌렸다”며 조선식 배의 기동력도 손색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나무못을 이용한 군선 건조 방식으로 복귀했다. 판옥선 건조의 기본 틀이기도 하다. 판옥선은 나무의 접합 부위에 ㄱ자와 ㄴ자 모양의 홈을 판 후 나무못으로 잇는 전통방식을 사용했다. 이음새 부분은 외부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견고하게 결합됐다. 나무못은 바닷물을 머금으면 부피가 팽창해 이음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선박의 손상 없이 해체해 수리하기도 쉬웠다. 반면 쇠못을 사용한 일본의 군선은 못과 나무가 완전히 결합하지 못하여 선체에 미세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음새의 쇠못이 녹슬어 배의 전반적인 내구성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양국 군선은 배의 바닥 구조도 달랐다.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이었다. 조선 시대의 모든 배들이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것은, 연안 항해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평저선은 비록 대양에서는 풍랑에 취약하지만, 선회력이 매우 뛰어나다. 선회력이 좋다는 것은 배의 방향 전환에 필요한 회전 반경이 짧다는 것으로, 암초가 많아서 좁고 물살이 거친 남서해안을 다니기에 유리했다. 또한, 내구력에 모든 설계를 집중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가의 함선과 비교했을 때, 구조적으로 판옥선이 훨씬 튼튼한 경우가 많다. 전시 교전능력과 튼튼함을 제외하면, 사실 항해성능은 매우 떨어졌고, 오로지 수비 목적의 전투용 배로 만들어졌다. 쓰임새를 연안에서의 화포를 이용한 해전에만 한정해서, 항해 목적보다는 전투를 위한 모든 기술을 배끼리의 충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