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원균과 칠천량해전 8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8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8편

수군 장수에게 필수적인 소양은 무엇보다 바다를 알고, 배를 알아야 한다. 7월 14일 통제영에서 함대를 출진시키기 전에 그는 먼저 견내량에서 부터 부산에 이르는 물길에서 작전기간 파도의 높이를 포함한 기상은 어떠한지, 그 날 조류는 순조류(順潮流)인지 역조류(逆潮流)인지 등을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았다. 판옥선의 구조상 파도가 험한 외해(外海), 큰 바다에는 적합지 않음도 고려해야 했다.

거제를 벗어나 괭이바다를 통과해서 부산에 이르는 물길은 판옥선에게 크게 불리한 여건임을 알고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판옥선은 바람을 받는 돛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격군(格軍)이 노를 저어서 인력으로 움직이는 전함이다. 크기도 크고 무거운 대형전함인데, 노를 저어 가려면 격군의 체력 소모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격군은 교대 병력까지 확보해야 하고, 2교대, 3교대로 교대할지라도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바, 필히 충분한 휴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박지 확보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순조류를 타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역조류를 거스르며 진군시켰고, 함선을 급히 몰아서 그 배를 움직일 격군을 쉬지 못하게 하여 피로도를 극에 달하게 만들어 탈진시켜 버렸다. 격군이 탈진하면 판옥선을 움직일 수 없고, 이는 전투불능상태에 빠지는 길이다. 수군 총사령관이, 그것도 앞서 경상우수사를 했다면서, 이런 정도 상식도 없이 전함을 무작정 몰아대고 격군을 다그치기만 했으니 수군 장수로서 기본 소양도 없고 자질 부족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사령관이 곤장을 맞았다고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천시(天時), 지리(地理)를 고려하여 유,불리도 따져보지 않고 출전한 것 자체가 장수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증거이고, 싸우러 가는 장수가 함대의 진군로, 퇴각로 그리고 정박지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준비하고 검토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다.

정유재란은 1597년 1월에 시작됐고, 이 전쟁의 첫 회전(會戰)인 칠천량 해전은 동년 7월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 패배를 기점으로 정유재란의 전선(戰線)이 하삼도 전역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되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실패했던 수륙병진작전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왜군이 한양을 다시 노릴 수 있게끔 됐다. 한마디로 정유재란 초반의 전세를 결정지은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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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순신이 막아내어 유지할 수 있었던 남해의 제해권이 일본군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이는 전라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는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아 인적·물적으로 조선의 보급고로 매우 중요했다. 일본 입장에선 임진년 당시 한양 이북으로 진격하는 데 가장 큰 방해요소인 해상 보급 문제가 원균 덕분에 해결된 셈이다. 이후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악전고투 끝에 최악의 사태를 막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평야지대 호남이 뚫리고 적이 서해안을 통해 해상으로 보급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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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