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원균과 칠천량해전 9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9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9편

당시 조선 수군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압도적인 패배도 패배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조선 수군 대다수가 갓 뽑은 오합지졸 신병들이 아닌, 임진왜란 개전부터 약 6년간 왜군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승리한 역전의 베테랑들이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군관들을 비롯한 지휘관들 역시 6년간 이순신 밑에서 맹활약을 펼친 실력파 부장들이 많았는데, 이 해전에서 그들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도망쳤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산도 대첩을 비롯해 6년간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온 주역들이 이 해전 한 번에 죄다 증발된 것이다. 해군에서 숙련된 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하면, 이는 큰 타격이며 사기가 떨어짐은 너무나 당연했다.

일본은 이후 남원과 전주를 공격하기 위해 일본 육군과 수군을 투입시키는데 이동하면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약탈과 학살이 벌어졌다. 이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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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에서의 패전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의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중에 선조가 했던 말은 칠천량 패전은 원균 잘못이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라는 것이다. 만약 패전의 책임이 원균에게 있다면 잘 싸우던 이순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원균을 앉힌 선조 또한 책임이 있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왕의 위신이 깎인다. 그러니 원균에게 잘못이 없고 패전은 단지 운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은근슬쩍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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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처음 패전 소식을 듣고 한산을 지키면서 호랑이가 버티는 듯한 형세를 지키며 우주방어 했어야 하는데 괜히 출동해서 졌으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하늘 때문이다. 라는 내용으로 말했다. 그런데 괜히 출동하여 적의 함정에 들어가지 말고 한산을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순신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을 한 이순신이 빨리 출동 안 한다고 탄핵하고 결국 백의종군에 처하고, 그 자리에 원균을 꽂아 넣은 책임자는 선조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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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 원균은 책임을 지는 일도 없었고, 엉뚱하게 1등공신이 되었다. 종1품 좌찬성에 추증, 원릉군(原陵君)이란 작호, 선무공신 1등 책록. 이것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고 전사한 그에게 주어진 포상이었다. 당시에도 여러 신료들이 포상이 지나치다고 하였다. 특히 선무공신 전체 18명, 1등은 3명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충장공 권율 장군은 인정되나 원균이 1등인 것은 지나치다,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러 번 간언했으나 그렇게 된 것은 바로 선조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