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경전서후耕前鋤後 - 앞에서 밭을 갈고 뒤에서 김을 매다. 

경전서후耕前鋤後 - 앞에서 밭을 갈고 뒤에서 김을 매다. 

경전서후(耕前鋤後) - 앞에서 밭을 갈고 뒤에서 김을 매다.\xa0

밭갈 경(耒/4) 앞 전(刂/7) 호미 서(金/7) 뒤 후(彳/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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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밭이지만 남편은 앞에서 쟁기질을 하고 아내는 뒤에서 호미로 김을 맨다.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평화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더불어 부부가 힘을 합쳐 오순도순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정겹다. 이 성어는 부부가 서로 도우며 일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 됐는데 晉(진)나라 때의 유명 시인 陶淵明(도연명)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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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晋(동진) 말기에 태어나 南朝(남조)의 宋(송)까지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도연명은 본명인 陶潛(도잠)보다 자로 더 많이 불린다. 그 이름으로 바로 떠오르는 것이 ‘歸去來辭(귀거래사)’다. 도연명은 증조부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이 고위직을 지낸 집안이었지만 자신은 낮은 벼슬로 청빈한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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彭澤(팽택)이란 고을의 현령을 하고 있을 때 상급 고을에서 감독관이 내려 왔다. 그럴 때 하급관리는 의관을 갖추고 맞이하는 것이 통례였는데 도연명은 그 앞에서 굽실거리며 융숭하게 맞아 줄 뜻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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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어린 아이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는가(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아불능위오두미 절요향향리소아)’라고 한탄했다. 그리고는 印綬(인수, 綬는 인끈 수)를 풀어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면서 부른 노래가 귀거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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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도 말리지 않고 남편의 뜻을 따라 가난한 생활을 했다. ‘남편은 앞에서 밭을 갈고 아내는 뒤에서 호미로 김을 맸다(夫耕於前 妻鋤於後云/ 부경어전 처서어후운)’. 李延壽(이연수)가 편찬한 ‘南史(남사)’의 열전 隱逸上(은일상)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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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워야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 쉽게 풀릴 일이 그렇지 못해 커지니 안타깝다. 이와는 다른 경우지만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를 하고 싶어도 적합한 일자리가 없어 고심한다. 취직한 자리도 출산 후에는 복직하기가 어려우니 아예 출산을 기피하거나 결혼까지 무작정 미룬다. 부부가 힘을 합쳐 살아가는 사회 환경은 이룰 수 없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