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북한의 드레스덴化

◇ 북한의 드레스덴化

◇ 북한의 드레스덴化

독일 동쪽 끝 드레스덴은 분단 시절 동독인들 사이에서 ‘무지의 지역’으로 불렸다. 서독 TV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주민들의 서독 방송 시청을 감시하는 동독 관리들도 집에선 서독 TV를 즐겼다. 그러다가 드레스덴으로 발령 나면 낙담했다. 그 시절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 전파를 잡기 위해 옥외 안테나 방향을 서쪽으로 조정했다. 동독 당국은 어떻게든 이를 단속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열망을 막기 힘들었다.

동·서독이 통일되던 1990년 이전에도 동독 사람들은 서독 매체를 통해 서방의 뉴스와 대중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1987년 6월 7일 서베를린 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공연이다. 동독 청년들이 장벽 너머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듣기 위해 몰려들자 동독 경찰은 군용 트럭의 엔진을 공회전시켜 훼방 놓았다. 보위의 노래를 이미 꿰고 있던 동독 청년들은 떼창으로 엔진 소음에 맞섰다. 이튿날 공연 현장에서 동독 경찰이 청년 수백명을 연행하자 동독 주재 서독 특파원들이 본사로 뉴스를 타전했다. 동독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지만 주민들이 서독 방송을 통해 자초지종을 파악한 뒤였다.

이런 독일 역사는 대북 전단 금지법이 서독에도 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법이 엊그제 우리 국회를 통과했다. 대북 전단뿐 아니라 북한에 유입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원천 차단하는 내용이다. 광고 선전물과 인쇄물, USB 같은 보조 기억 장치까지 금지 대상이다. 국제사회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한국 정부를 이상한 정권으로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야당 태영호 의원은 이 법이 “김정은⋅김여정에게 충성하고 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70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손잡고 북한 주민의 눈과 귀, 오감을 이중 삼중으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전역을 세상과 차단된 드레스덴화(化)하고 주민 생존조차 위협하는 법이란 얘기다. 서독이 동독 정부 눈치 보며 이런 법을 만들었다면 동·서독 청년들은 통일을 열망하며 보위의 노래를 함께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드레스덴도 여전히 무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태 의원은 북한 장마당에서 한국 드라마를 고르면서 취향 차이로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익숙한 북한 젊은이들은 ‘자기’ ‘오빠’ 같은 표현을 쓴다. ‘ㅋㅋ’ 같은 문자메시지도 보낸다. 이런 교류가 쌓여야 통일이 앞당겨진다. 물론 북한 왕조와 한국 운동권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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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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