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세와 인류세
◇ 홀로세와 인류세
10여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인류세(Anthropocene)라고 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에 미국의 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를 유명하게 만들고 그 중요성을 전파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인 폴 크루첸이다.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크루첸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지구의 역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주장하며 인류세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인류세는 지질학 분야에서 아직 정식 지질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과학계는 물론 광범위한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며 급속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반면 최근에 홀로세(Holocene)가 세 개의 시기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은 국내 언론에서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비공식용어인 인류세에 대한 관심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이다. 홀로세는 그리스어 Holos(whole)와 kainos(new)가 합쳐진 용어로 ‘전체가 새롭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질시대 중에서 가장 최근인 1만17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지칭하며, 기후학적으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의 간빙기를 의미한다.
2018년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에서는 홀로세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것을 공식 승인했다. 과거에는 홀로세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해서 얘기했지만, 이제는 1만1700년에서 8200년 전까지를 그린란디안(Greenlandian), 8200년에서 4200년 전까지를 노스그리피안(Northgrippian), 42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메갈라얀(Meghalayan)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구분은 기본적으로 기후 변화 기록을 근거로 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된 후 약 8200년 전까지 지속된 따뜻한 시기를 그린란디안, 그 후 약 4200년 전까지 이어진 점진적인 냉각기를 노스그리피안으로 정한 것이다.
홀로세의 마지막 시대인 메갈라얀은 4200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거대 가뭄(megadrought)을 시작으로 한다. 메갈라얀 초의 거대가뭄은 약 200년 동안 지속된 파괴적인 사건이었고 전 세계의 농업기반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강과 양쯔강 지역 등에서는 광범위한 이주가 발생했다.
그란란디안과 노스그리피안은 그린란드의 빙하기록에서 기원한 용어이고, 메갈라얀은 인도 북부 메갈라야 주에 있는 동굴(Mawmluh Cave)의 석순에서 주요 자료가 얻어졌기 때문에 명명된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질시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지질시대를 층서학적으로 구분하여 각 시대별 단위와 정의를 설정하는 역할은 IUGS 산하의 국제층서위원회(ICS)에서 담당하고 있다. ICS는 1977년 출범한 이래 ‘황금 못(golden spike)’이라고 하는 모식단면을 지정하고 있다. 황금 못은 쉽게 말하면 지질시대의 경계를 의미하는데, 황금 못을 박는 것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각 시대별 연구위원회(working group)의 연구결과를 심사한 후 투표를 하고, 다시 ICS의 소위원회와 ICS의 투표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IUGS의 인준을 받아야 공식적인 국제적 시간층서 경계로 인정받게 된다.
홀로세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작업 역시 이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2010년 제4기 층서 소위원회(SQS)에서 처음 제안된 후 2018년 6월에 IUGS의 인준을 받았으니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과거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 경계의 국제표준을 바꾸는 작업은 1974년에 시작되어 2000년에 인준을 받았고, 인류세는 작업이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질시대를 바꾸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질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자료와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임현수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