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재갈법’이 된 탄소중립법
◇ ‘경제 재갈법’이 된 탄소중립법
지난 8월 ‘언론 재갈법’이라는 오명을 쓴 언론중재법의 국회 통과는 저지됐지만, ‘경제 재갈법’이 될 수 있는 탄소중립법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뿐히 통과했다. 탄소중립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을 감축하는 국가 감축 목표(NDC)를 법제화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한술 더해 40%로 상향 조정한 NDC 계획을 밝혔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졸속 목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배출 피크 시점에 관한 의문이다. 정부는 2019년,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9%, 7.3% 감소한 사실을 근거로 2018년을 배출 피크 시점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미·중 무역 갈등, 2020년 코로나로 우리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 에너지 수요가 1.5%, 4% 감소했고, 원자력발전 이용률이 2018년 65.9%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2019년 70.6%, 2020년 75.3%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배출량이 줄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경제가 회복되어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비중과 이용률이 다시 낮아진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얼마든지 다시 증가할 수 있다. 2018년 배출 피크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면, 2018년 기준 목표 설정은 그야말로 제 발등 찍는 꼴이 될 수 있다.
둘째, 감축 목표 설정에 관한 의문이다. 작년 12월까지 NDC는 2018년 대비 26.3% 감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탄소 중립 비전 선언으로 탄소중립법이 추진(사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30% 감축안을 제시했으나 국회는 별다른 논리 없이 35% 이상으로 입법화했고, 이를 받아 탄소중립위원회는 40%로 확정 지었다.
매년 4.2%씩 감축해야 달성할 수 있는 무리하기 짝이 없는 목표다. 이렇게 빠르게 감축하는 국가는 없다. 전문가의 밀도 있는 논의 과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NDC가 40% 이상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언급과 일반 시민 500여 명이 참여한 탄소중립시민회의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입법화에 통상 필요한 비용 추계도 하지 못한 이유를 알 만하다.
셋째, 경제성장과 조화를 이루는 현실적 감축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공상과학적 무책임한 상상의 나열뿐이다. 현재 약 16GW 규모의 태양광을 단 8년 만에 거의 100GW로 증가시켜야 한다.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믿고, 한국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오늘도 시뻘건 쇳물을 토해내고 있는 멀쩡한 고로를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획기적인 신기술 없이는 탄소 중립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문제는 신기술 개발에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줄리언 올우드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동안 개발된 탄소 감축 기술이 전체 감축량의 5%를 차지하기까지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기술이 2050년까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래 희망 기술에 의존한 채 무리하게 설정한 NDC는 경제에 재갈을 물려 경제 후퇴를 자초할 뿐이다. 아무도 경제 후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수용될 가능성을 잃은 탄소 중립 계획은 실현 가능성도 낮아진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 설정은 행동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을 낮추는 부작용만 보이는 ’잘못된 희망 증후군’일 뿐이다. 탄소중립법이 ‘경제 재갈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