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의 정육점
◇ 성균관의 정육점
중국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중국 요리의 개성은 ‘동파육’에 잘 나타난다. 그 대신 중국 쇠고기는 맛이 별로 없다. 한국은 쇠고기가 특별하게 맛이 좋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명절 선물로 소갈비 세트를 보낸다.
한국을 대표하는 육류는 한우다. 한국의 쇠고기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니까 ‘축산실록’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남인식(63)은 농협에서 축산기획 상무를 지냈는데 의령 남씨 도사공파 17대 종손이다. 수년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다 뒤져서 축산에 관한 기록을 뽑아내어 책을 썼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과 고기를 담당하는 노비들인 전복(典僕) 이야기였다. 성균관 전복들에게만 소를 도살해서 시중에 팔 수 있는 전매특허권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송금(松禁) 정책과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하는 우금(牛禁) 정책을 시행하였다.
소가 없으면 농사짓기 힘들다. 그래서 허가 없이는 소를 도살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였다. 예외적으로 성균관 전복에게는 소를 도살할 수 있는 특허를 왜 주었던 것일까?
성균관은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던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다. 유생 정원은 200명. 1년 동안 이 200명이 먹는 비용이 쌀로 환산하면 960석이 들어갔다. 이 비용을 대는 부서가 양현고(養賢庫)였다. 재원은 1000결(300만평)의 학전(學田)이 있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였다. 겨우 밥과 국, 나물 정도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나머지 비용을 성균관 소속의 전복(노비)들이 부담하였다. 성균관 전복의 임무는 양곡, 채소, 생선, 땔감 등을 매달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울 동소문 근처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이 먹고살면서도 성균관에 상납할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도록 소를 도살해서 쇠고기를 시중에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원래 이들은 문묘에 제사 지낼 때 필요한 희생 제물을 공급하는 임무였다. 푸줏간인 도사(屠肆)를 설치·운용하고 있었다. 국가 제사에 쓰고 남은 고기를 민간에 팔아 수입을 챙겼다. 나중에는 성균관 재원 담당 임무까지 맡았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독점적 특권인 소의 도살권과 정육점(懸房)을 운영하면서 알짜배기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들이 운영하는 정육점이 서울 시내에 대략 40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쇠고기 외에도 소가죽, 소기름, 소뿔 판매도 짭짤하였다. 이 수입으로 성균관의 유지비를 댔다. 쇠고기는 국가 인재 양성의 장학금이었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