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공민왕은 진짜 변태였을까?

■공민왕은 진짜 변태였을까?

■공민왕은 진짜 변태였을까?

공민왕이 태어난 때는 고려가 원(몽고)에 의해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공민왕은 1330년에 태어나 12세 때부터는 원나라 수도 연경에 가서 생활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으로 국권을 유린당하고, 고려의 왕자들은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원나라에 가서 살아야했다. 원 간섭기, 고려의 왕 7명(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중 충목왕, 충정왕이 어린 나이로 죽어 혼인을 못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원의 공주와 결혼했다. 원의 부마국(駙馬國)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 5명의 고려왕은 원의 공주인 부인 앞에서 고려의 왕이 아닌 신하처럼 살았다고 한다. 심지어 고려왕 중 처음으로 몽고 공주와 결혼한 충렬왕은 쿠빌라이 칸의 딸인 부인에게 맞고 살았을 정도라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충렬왕이 자기(제국대장공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들어갔다고 욕을 하고 지팡이로 때리기도 했다." - <고려사> -

원나라는 고려의 왕을 마음대로 임명했고 또 폐위시켰다. 공민왕의 아버지와 형은 왕위를 두 번씩이나 주고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도 벌어졌다. (공민왕 父 충숙왕 : 1313~1330, 1332~1339, 공민왕 兄 충혜왕 : 1330~1332, 1339~1344)

자주 드라마나 영화 ·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큼, 공민왕은 극적인 삶을 살다가 갔다. 고려사에 기록된 공민왕의 말년은 왕으로서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거의 반미치광이 변태 행위들로 가득차 있다. 오래 전 ‘쌍화점’ 이라는 영화에서도 공민왕의 이미지는 아주 퇴폐적이고 변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는 조선건국 후 정도전, 조준 등에 의해 새롭게 쓰여 지기 시작하여, 세종 대에 가서 완성 된다.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는 고려 말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공민왕의 변태적 사생활은 일부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고려 말의 혼란을 부각시켜 조선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되게 쓰여 진 부분도 많다.

공민왕은 그의 부인이자 원나라 공주였던 노국공주를 너무 사랑해서 그녀가 죽은 뒤 큰 상심에 빠져 엄청난 방황을 하게 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그가 아꼈던 근위병 ‘자제위’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