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제 일을 남보다 더 모르다.

등 등(火/12) 아래 하(一/2) 아닐 불(一/3) 밝을 명(日/4)

가을을 글 읽기 좋다며 燈火可親(등화가친)의 계절이라 많이 불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야 계절이 따로 없고, 또 가을은 행락철이라 더 읽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었다. 요즘은 밝은 등이 얼마나 많은데 짐승기름으로 심지를 태우는 등으로 독서를 했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 것이다. 게다가 등잔받침에 의해 어둡기까지 하니 더 환경이 안 좋다. 그만큼 역경을 이기고 열심히 하라는 비유로 받아들이면 될듯하다. ‘등잔 밑(燈下)이 어둡다(不明)’는 속담을 그대로 번역한 이 성어는 가까이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잘 찾지 못할 때 많이 쓴다. 편자 미상의 한문 속담집 ‘東言解(동언해)’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고수끼리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하수가 옆에서 알 수 있는 수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직접 업무를 맡고 있는 당국자가 이해관계에 밀접한 사람보다 알지 못하는 경우는 當局者迷(당국자미)란 말을 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오히려 더 모른다는 속담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두메 앉은 이방이 조정 일 더 잘 안다’, ‘도회 소식 들으려면 시골로 가라’ 등이 그것이다. 촌사람이라 비웃다가 도회지나 서울 돌아가는 사정을 더 잘 알아 큰코다치는 경우다.

조선 전기의 학자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이 지은 한문 수필집 ‘筆苑雜記(필원잡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 李穡(이색)의 아들인 李種善(이종선)과 역시 문장에 뛰어났던 權近(권근)의 아들 權踐(권천)은 처남남매 사이였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때 술자리를 가졌다. 거나해진 권천이 서로가 牧隱(목은)의 아들인데 문장이 부족하고, 陽村(양촌)의 아들인데 문명이 또 미치지 못한다면서 말했다. ‘그대와 나는 마땅히 등하불명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君吾兄弟 當作燈下不明契/ 군오형제 당작등하불명계).’ 목은은 이색, 양촌은 권근의 아호다. 훌륭한 아버지를 가까이서 잇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는데 듣는 사람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들은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컸고 자신들의 재능이 따라가지 못함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을 잘 알면서도 실천은 못한다. 제일 잘 알아야 하는 자신의 일이 어두운데 제삼자가 더 잘 안다. ‘법 밑에 법 모른다’고 법 다루는 사람이 어기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없을까. 가까이에 인재를 두고서도 실력은 뒷전인 채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고르다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한 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