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목요일

대代를 이은 후궁, 숙창원비淑昌院妃

■ 대代를 이은 후궁, 숙창원비淑昌院妃

■ 대(代)를 이은 후궁, 숙창원비(淑昌院妃)

숙창원비 김씨(생몰년 미상(生沒年 未詳)는 고려 충렬왕(忠烈王)의 제3비(妃)로 김취려(金就礪)장군의 손녀이며 김양감(金良鑑)의 딸이다. 뛰어난 미인으로 일찌기 최문(崔文)에게 시집을 갔으나 젊어서 과부가 되었다. 세자로 있던 충선이 궁녀 무비가 충렬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도 죽었고 각종 폐단이 생겼다고 판단하여 무비와 그 측근 세력을 죽였는데, 세자가 부왕(父王)인 충렬왕의 마음을 위안하기 위하여 김씨를 맞아들여 숙창원비로 봉하였다.

그녀가 과부라는 사실은 당시 사회 풍습 및 과부 출신의 왕비들이 꽤 있었던 점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숙창원비가 입궁한 후 그녀의 오빠 김문연은 30세의 나이에 곧바로 정2품 첨의시랑찬성사에 올랐다. 충렬왕이 죽은 뒤에는 오빠 김문연의 집에 자주 찾아온 충선왕과 관계를 맺고 얼마 후 숙비(淑妃)에 봉해졌다. 숙창원비가 숙비로 진봉(進封)된 후에는 오빠 김문연은 원나라 관직까지 얻었다.

한편, 당시 감찰규정 우탁은 왕이 부왕(父王)의 후궁과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며, 도끼를 메고 궁으로 들어가 상소를 올리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몽고에는 부왕이 사망할 경우 모후를 제외한 부왕의 후궁들을 그 아들이 취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이러한 풍습을 따라 그녀를 취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녀가 충선왕의 후궁이 된 후 왕은 그녀에게 혹하여 정사를 중단하고 마침내 팔관회까지 중지시켰다. 또 충선왕은 원나라 황후에게 청하여 그녀에게 몽고 고유의 머리 장식인 고고를 선물하게 하였다. 그녀는 고고를 쓰고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열고 원의 사신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축하를 받았다. 또 그녀는 어머니상을 당했을 때에도 연회를 열었는데 이 연회에는 재상들이 참여하였고, 그녀가 은자원에서 법회를 열 때에도 재상들이 참여하였다. 또 평소 그녀가 입고 다니던 의복 등은 공주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충선왕의 제6비 순비 허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순비도 숙창원비와 마찬가지로 원나라에서 고고를 받았는데, 이때 고고를 받은 것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자 숙창원비와 순비는 각자 자신의 옷과 미모를 뽐내기 위해 연회장에서 5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이나 생몰년(生沒年),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자녀는 없었고, 시호는 숙창원비(淑昌院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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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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