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응변臨機應變 - 그때그때의 사태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
임기응변(臨機應變) - 그때그때의 사태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
임할 림(臣/11) 틀 기(木/12) 응할 응(心/13) 변할 변(言/16)
기회가 왔을 때 잘 활용할 수 있어야 성공한다.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는 자는 소수이다. 그래서 한 번 간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時不再來(시부재래)라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勿失好機(물실호기)라 했다. 그런데 죽느냐 사느냐 대치중인 전장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은 적의 작전에 맞게 수시로 대응책을 바꿀 수밖에 없다.
적의 사정을 보아주다가 참패한 宋襄之仁(송양지인)보다 속임수 계책을 쓰더라도 이겨야 하는 전쟁에서 기회를 보아가며(臨機) 거기에 맞춰 수시로 대처(應變)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병법의 일종에서 나왔을 이 말이 처음에는 똑 같은 뜻으로 隨機應變(수기응변)이나 줄여서 應變(응변) 등으로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재미있는 몇 곳의 예를 보자. 중국 西晉(서진)의 학자 孫楚(손초)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세속을 벗어나 은거하려는 뜻을 품고 친구에게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漱石枕流/ 수석침류)고 잘못 말했다. 친구가 지적하자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고 한 것은 옛날 은자 許由(허유)처럼 더러워진 귀를 씻기 위함이고, 돌로 양치질은 치아를 튼튼히 하기 위함이라 했다.
억지의 대명사가 된 이 말을 남기고도 ‘晉書(진서)’에는 손초를 잘 평가했다. ‘조정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책이 뛰어났고 임기응변이 뛰어났다(廟勝之算 應變無窮/ 묘승지산 응변무궁).’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吳(오)나라의 孫權(손권)은 명신 周瑜(주유, 瑜는 아름다운옥 유)를 잃고 상심해 있을 때 魯肅(노숙)이 새 인재로 龐統(방통)을 추천했다. 손권이 鳳雛(봉추)라 알려진 방통을 만나 보니 얼굴이 검은 추남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생 무엇을 위주로 공부했느냐고 묻자 방통이 답한다.
‘저는 어떤 한 가지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바뀝니다(不必拘執 隨機應變/ 불필구집 수기응변).’ 또 주유와 비교해서 학문이 어떠냐고 물으니 완전 다르다고 해서 손권이 등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일 방통은 劉備(유비)에 발탁돼 공을 세우게 된다. 손권이 응변의 인재를 놓친 셈이다.
그때그때 처한 상태에 따라 즉각 그 자리에서 대처한다는 것은 기회를 활용하는 능력이다. 기회는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우리 속담 ‘떡 본 김에 굿한다’고 해도 약삭빠르다고 손가락질만 할 수 없다. 적과 대치하는 것과 같은 絕體絕命(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고선 변화가 무쌍한 오늘날 형편에 따라 수단을 강구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잦아 대부분 용인된다. 정도를 걷는다고 머뭇거리다가는 ‘사또 떠난 뒤에 나팔 분다’는 말대로 아무런 효과가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