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탐천지공貪天之功 – 하늘의 공을 탐내다, 남의 공을 가로채다. 

탐천지공貪天之功 – 하늘의 공을 탐내다, 남의 공을 가로채다. 

탐천지공(貪天之功) – 하늘의 공을 탐내다, 남의 공을 가로채다.\xa0

탐낼 탐(貝/4) 하늘 천(大/1) 갈 지(丿/3) 공 공(力/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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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아무리 작아도 성취한 사람이 있다. 공이 있는 주인공을 제쳐 놓고 모두 자신이 한 일인 양 가로채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진다. 조그만 인간사에도 그러한데 하늘의 순리대로 된 일을 자기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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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공을 탐낸다는 이 성어는 남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가로챈다는 뜻도 있고, 남의 공적을 도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고결한 隱士(은사)였던 介子推(개자추)의 고사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寒食(한식)의 유래가 되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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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介之推(개지추)라고도 하는 개자추는 모시던 공자를 왕위에 올리는 큰 공을 세웠음에도 전혀 내세우지 않았고, 논공행상에서 빠졌어도 왕을 원망하지 않았다. 공자가 왕이 된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어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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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氏傳(좌씨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북방의 晉(진)나라 獻公(헌공)이 驪姬(여희)의 꾐에 빠져 태자를 죽이거나 내쫓는 바람에 重耳(중이)는 19년이나 되는 긴 유랑생활을 했다. 여러 신하와 이웃 나라의 도움으로 뒤에 五霸(오패) 중의 한 사람이 되는 文公(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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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생 끝에 62세의 나이로 등극한 문공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신하들을 포상하고 중용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망명생활을 하면서 굶주린 문공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바친 개자추가 빠졌다.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왕에게 고하라고 해도, 어머니도 나서 상을 구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개자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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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진나라를 없애지 않은 것은 반드시 주재자가 있기 때문인데 바로 문공이 그 사람이라며 말한다.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으니 될 일인가(竊人之財 猶謂之盜 況貪天之功以爲己力乎/ 절인지재 유위지도 황탐천지공이위기력호)?’ 僖公(희공, 僖는 즐거울 희) 24년 조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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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알고 개자추를 불러 들였으나 산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은신한다며 나오지 않았다. 나오게 하기 위해 불을 질렀지만 꺼진 뒤에 어머니를 업은 채 시체로 발견됐다. 사람들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해 淸明(청명) 하루 전날을 한식으로 삼고 각 가정은 불씨를 없애고 찬 음식을 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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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양보를 모르고 자신의 공만 내세우는 사람이 없을까. 개자추처럼 자신의 공을 숨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남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은 더욱 멀리해야 하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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