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조선건국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정도전과 이방원이었는데, 건국 후 왜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은 잔인하게 살해 되었을까? 정도전이 죽고 난 뒤 사관(史官)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개국할 즈음 가끔 취중에 중얼거리기를 “한 고조가 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썼도다!”라고 했다. 무릇 나라를 세울 적에 그의 꾀를 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큰 업적을 이루어 진실로 으뜸의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량이 좁고 시기심이 많았으며,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해치고자 했고 묵은 감정을 꼭 갚으려 했다. 매양 임금에게 사람을 죽여 위엄을 세우라고 권했지만 임금은 모두 듣지 않았다.』 《태조실록》 권14, 7년 8월조

앞부분은 정도전의 행적을 나타낸 것이지만, 뒤의 인물평은 다른 역사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분명하다. 태조실록은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이 태종이 되었을 때 쓰여진 것이니 사관이 태종의 비위를 맞추어 썼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관도 인정할 만큼 정도전의 건국 과정에서의 역할은 이성계를 넘어 설 만큼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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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왕조체제를 갖추되 ‘왕’은 상징적 인물로 남아있고, 실질적인 운영은 재상들이 운영하는 재상총재제였다. 정도전은 자신이 지은 조선경국전에 자신의 건국의 이념을 제시하고 정책화하여 재상, 즉 신하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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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음도 있고 현명함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 같지 않으니, 재상은 국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는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의 주장은 지금으로 보면 유럽의 입헌군주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왕이 재상을 임명하는 시스템이었으므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는 왕 아래서는 정도전이 말하는 재상총재제는 별 의미가 없다. 정도전이 그런 한계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정도전은 다루기 쉬운 나이 어린 방석을 세자로 세우고 이성계 사후 전권을 잡고 재상총재제의 기반을 닦으려고 했을 것이다. 정도전의 이상(理想)적인 생각은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 그리하여 절대군주권자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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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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