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시조債帥市曹 - 빚을 내어 된 장수와 시장판이 된 관아,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
채수시조(債帥市曹) - 빚을 내어 된 장수와 시장판이 된 관아,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
빚 채(亻/11) 장수 수(巾/6) 저자 시(巾/2) 무리 조(曰/7)
공정하고 적재적소에 앉혀야 할 인사를 뇌물을 받고 자리를 준다거나 각종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에게 혜택을 베푼다면 그 조직이 잘 될 수가 없다. 물론 중요한 자리에 능력만 있다면 원수라도 가리지 않고, 가족이라도 거리끼지 않고 추천한 親仇不避(친구불피)의 고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다. 後漢(후한)때 포도주 다섯 말을 주고 凉州(양주)지역의 벼슬을 얻었다는 一斛凉州(일곡양주, 斛은 휘 곡)의 孟佗(맹타, 佗는 다를 타)가 있다. 조선 시대에도 다를 바 없었다. 온실을 지어 신선채소로 반찬을 임금께 올린 雜菜判書(잡채판서)의 李冲(이충), 인삼을 바쳐 재상에 올랐다고 沙蔘宰相(사삼재상)으로 불린 韓孝純(한효순)이 그들이다.
빚을 내어 오른 장수(債帥)와 벼슬을 팔고 사느라 시장판이 된 관아(市曹)라는 이 성어는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를 조롱한다. ‘舊唐書(구당서)’와 ‘北史(북사)’에 따로 등장하는데 간략하게 그 내용을 보자. ‘장수가 되려면 내관에게 뇌물을 바쳐야 했는데 재산이 없는 자는 부잣집에서 돈을 꾸었다(禁軍將校當爲帥者 自無家財 必取資於人/ 금군장교당위수자 자무가재 필취자어인).’ 이렇게 하여 장수가 된 사람은 고혈을 빨아 치부했다. 北魏(북위) 종실인 元暉(원휘)의 집에는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천하의 사람들은 시장바닥이라며 시조라 했다(天下號曰市曹/ 천하호왈시조).’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尹愭(윤기, 愭는 공손할 기)는 ‘無名子集(무명자집)’에서 청탁과 뇌물을 논함(論請託賄賂/ 논청탁회뢰)이란 글을 남겼다. 한 부분을 떼어본 부분에도 이 성어가 나온다. ‘관리는 간사한 무리와 서로 이익을 주고받고, 관청은 사사로운 청탁이 들어오는 문이 되어, 돈을 많이 바치면 좋은 곳을 얻고, 돈을 적게 바치면 나쁜 곳을 얻으니, 채수와 시조의 호칭이 생겼다(吏與姦爲市 官以私爲門 金多得善處 金少得惡處 而債帥市曹之號興/ 리여간위시 관이사위문 금다득선처 금소득악처 이채수시조지호흥).’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뇌물의 세태가 인재를 중시하고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오늘날에는 어떨까. 젊은이들이 신의 직장이라며 몇 번이나 도전하는 공기업에 세력가의 자제나 추천으로 들어가는 일이 숱하게 적발됐다. 사기업에서 대주주의 자제라고 점수를 조작하고, 노조원의 자녀라고 우선권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방면에서 공정한 경쟁이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