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7일 목요일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불어 허물을 찾다.

불 취(口/4) 털 모(毛/0) 찾을 멱(見/4) 허물 자(疒/6)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말하기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은 속담대로 ‘식은 죽 먹기’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일부러 들춰내지 않더라도 눈에 훤히 들어오는 법이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성경(마태복음 7장)에서 깨우쳐도 아랑곳없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불을 켜고 묻혀있는 흠을 찾기까지 한다. 이럴 때 머리카락을 불면서까지(吹毛) 숨어있는 흉터를 찾아낸다(覓疵)는 이 성어가 적격이다. 吹毛求疵(취모구자), 吹毛索疵(취모색자)로도 쓰고 洗垢求瘢(세구구반, 瘢은 흉터 반)도 같은 뜻이다. 覓(멱)은 서울 남산의 옛 이름 木覓山(목멱산)할 때도 사용되는 글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한 韓非(한비)와 후학들의 논저 ‘韓非子(한비자)’에 비유가 처음 나온다. 군주와 신하간의 안정적 관계를 순리에 의해 이끌어야 한다는 큰 원칙 大體(대체)편에 들어 있다. 부분을 요약해보자. 현명한 군주는 조그만 지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법술에 의해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해야 한다.

하늘의 이치에 역행하지 않고 사람의 본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터럭을 불면서 남의 작은 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때를 씻어 알기 힘든 상처를 찾지 않는다(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불취모이구소자 불세구이찰난지).’ 높은 자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려면 사소한 것까지 들춰내다간 신망을 잃게 되리라는 가르침이다.

고려 말의 문신이자 대학자 李穡(이색)의 시 구절에도 등장한다. 출세 늦음을 한탄하며 서로 다투어 남을 모함하는 세태를 꼬집는 부분에서다. ‘터럭 불어 흠을 찾아 서로 헐뜯기도 하는데, 몸을 숨겨 남 모략하니 더욱 가소로워라(吹毛求疵或相詬 匿影射人尤可嗤/ 취모구자혹상후 닉영사인우가치).’ 詬는 꾸짖을 후, 尤는 더욱 우, 嗤는 비웃을 치. ‘牧隱詩稿(목은시고)’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