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머금을 함(口/4) 고함지를 포(口/5) 북 고(鼓/0) 배 복(肉/9)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세월이 이어지면 太平烟月(태평연월)이다. 모두들 먹고 입고 자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함이 첫째다. 이렇게 살도록 위정자들이 잘 이끌던 시절을 나타내는 성어는 많다. 평화스런 거리 康衢煙月(강구연월),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줍지 않는 路不拾遺(노불습유), 밤에 집 문을 열어 놓는 夜不閉戶(야불폐호) 등이다. 이런 세월을 가져오게 한 말이 음식을 잔뜩 먹어(含哺) 배를 두드린다(鼓腹)는 이 성어다. 흔히 속어로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많아져 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따시고‘는 ’따습다’의 사투리지만 더 와 닿는다.
천하가 태평하여 늙은 농부가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했다는 擊壤歌(격양가)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인 堯(요)를 기린 노래다. 격양은 옛날 중국에서 신짝같이 생긴 두 개의 나무 중 하나를 땅 위에 놓고 다른 나무토막을 던져 맞추던 놀이라는데 노래든 놀이든 시름을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한 임금을 찬양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국 南宋(남송) 말에서 元(원)나라 초기에 활약한 한족 학자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내용이 실려 있다. 史記(사기), 漢書(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정사 18사를 역사와 아울러 한문을 익히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학동들에게 읽게 했던 책이다.
帝堯篇(제요편)의 부분을 보자. 요임금은 어질고 지혜로운데다 근검하여 백성들은 하늘같이 우러러보았다.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한지 50년이 되는 해 요임금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가 실제 천하가 태평스러운지 살펴보았다. 한 노인이 무언가를 잔뜩 먹고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有老人 含哺鼓腹 撃壌而歌/ 유노인 함포고복 격양이가). 이 노래가 격양가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잠자네(日出而作 日入而息/ 일출이작 일입이식),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해먹네(鑿井而飮 耕田而食/ 착정이음 경전이식), 여기에 임금의 힘이 무슨 필요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제력우아하유재).’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의 기본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다. 이 기본을 해결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애를 쓴다. 하지만 모두에게 골고루 의식이 주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檀君(단군)이래 가장 잘 살게 됐다는 산업화 이후다. 문제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다. 온갖 정책을 펼치며 빈곤층을 줄이려 하지만 뜻대로 안 되고 벌어지기만 한다. 잔뜩 먹어 배 터지고, 굶주려 배를 움켜쥐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