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비의 친잠례親蠶禮
■ 왕비의 친잠례(親蠶禮)
왕비는 유교 국가의 여성 대표로서, 밖으로는 사회 전체의 음덕(陰德)을 진흥시키고 안으로는 궐내 내명부를 통솔하였다. 왕비가 행하는 대표적인 의식 중 여성 노동의 상징인 뽕따기와 길쌈하기를 장려하는 행사가 있다. 이 중 잠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왕비가 친히 행하는 의식을 친잠례라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잠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전국에 잠실을 두었는데, 한양에도 동잠실과 서잠실을 두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다. 궁궐 안의 넓은 후원에도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후원에 설치한 잠실을 내잠실(內蠶室)이라고 하였는데, 왕비는주로 이곳에서 친잠례를 하였다. 친잠례를 하기 전에 누에의 신인 선잠(先蠶)에게 제사를 올렸다. 선잠을 모신 곳이 선잠단(先蠶壇)인데, 조선 초기에 동소문(혜화문) 밖에 있다가 후에 선농단(先農壇) 있는 곳으로 옮겼다.
선잠단 제사는 다른 사람을 보내 대신 행하거나 왕비가 친잠하는 장소에 별도로 선잠단을 쌓고 직접 제사를 지냈다. 왕비가 뽕을 딸 장소에는 채상단(採桑壇)이라는 단을 쌓았다. 채상단을 쌓은 후 잔디를 심고 주변에 휘장을 쳐서 다른 곳과 구별하였으며,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머무를 천막을 쳤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뽕을 따고 누에를 치기 위해서는 광주리, 갈고리, 시렁, 잠박(蠶箔), 누에 등이 필요했다. 왕비가 딴 뽕을 담기 위한 도구인 광주리는 대나무를 쪼개어 엮어 만들었고, 지팡이 모양의 갈고리는 기다란 뽕나무를 당기기 위한 도구이다. 시렁은 잠판을 놓기 위한 구조물이고, 잠박은 누에를 키우는 깔자리로 대나무로 만들었다.
시렁 위에 잠판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잠박을 놓은 후 누에를 놓아기르는데, 때에 맞춰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주었다. 친잠례 때 왕비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왕세자빈을 비롯하여 내외명부의 여성들이었다. 내명부는 1품 이상, 외명부는 당상관 이상의 부인들이 선발되었다.
친잠할 장소에 도착한 왕비는 우선 선잠단에 제사를 올린 후 채상단 옆의 천막으로 이동하여 일상복인 황색 국의(鞠衣)로 갈아입었다. 왕비는 채상단의 남쪽 계단을 이용해 단으로 올라가 다섯 가지의 뽕나무 잎을 딴 후 광주리에 넣었다. 이후에는 수행 여성들이 채상단 주의에서 뽕잎을 따기 시작하는데 1품 이상은 일곱 가지, 그 이하는 아홉 가지를 땄다. 왕비는 이 모습을 채상단의 남쪽에서 관람하였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딴 뽕잎을 누에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는데, 이때는 왕비 대신 왕세자빈이 수행 여성들을 거느리고 갔다. 누에를 지키고 있던 잠모(蠶母)는 이 뽕잎을 잘게 썰어서 누에에게 뿌려 주었다. 누에가 뽕잎을 다 먹으면 왕세자빈이 다시 수행여성들을 거느리고 왕비에게 돌아왔다. 직접적인 친잠 행사는 여기까지이고, 이후에는 왕세자빈 이하 모든 여성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를 위해 왕비와 수행 여성들은 다시 평상복을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예복을 차려 입은 왕비가 채상단에 오르면 수행 여성들은 왕비에게 네 번 절을 올렸고, 연회가 끝나면 왕비는 다시 의장물을 갖추어 내전으로 환궁하였다. 궁중에서는 왕이 왕비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대소 신료들은 친잠을 위해 고생한 왕비에게 글을 올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