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저유어釜底游魚 -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
부저유어(釜底游魚) -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
가마 부(金/2) 밑 저(广/5) 헤엄칠 유(氵/9) 고기 어(魚/0)
몹시 위험한 처지에 놓여 목숨이 간당간당한 경우를 이를 때를 비유한 성어가 제법 많다. 여기저기 들쑤시며 음식을 훔치는 쥐가 독 안에 빠지면 꼼짝달싹 못하는 入甕之鼠(입옹지서)가 된다. 도마 위에 오른 고기 俎上之肉(조상지육)이나 약간 나은 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의 새, 池魚籠鳥(지어농조)도 부자유스럽긴 마찬가지다.
莊子(장자)가 비유한 涸轍鮒魚(학철부어, 涸은 물마를 학)도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솥바닥(釜底)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游魚)도 다를 바 없는 신세다. 곧 삶길지도 모르고 놀지만 사람 목숨으로 치면 命在頃刻(명재경각), 風前燈火(풍전등화)인 셈이다.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가 서기 25년 재건한 後漢(후한)은 초기에는 서역까지 뻗어 국력을 과시하다가 외척과 환관의 농간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외척의 대표적인 인물 梁冀(양기)는 여동생이 8대 順帝(순제)의 왕후가 된 후 4대에 걸쳐 帝位(제위)도 마음대로 폐립하는 등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했다.
이 때 하급관리 張綱(장강)이란 강직한 사람이 양기를 규탄하여 눈 밖에 났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어 지방서도 비리가 들끓자 황제는 장강을 비롯한 8명에게 규찰을 시켰다. 장강은 더 큰 도둑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수레를 묻고 양기를 탄핵한 埋輪攬轡(매륜남비, 轡는 고삐 비)의 고사로 남았다.
앙심을 품은 양기는 장강에게 지방관을 죽이고 모반을 일으킨 張嬰(장영)을 진압하도록 보냈다. 장강은 양기의 속셈을 알고도 두려움 없이 부임하여 장영을 설득했다. 장강의 사람됨을 믿은 장영 일당들은 살기 위해 이렇게 도적이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잠시 숨만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약어유부중 천식수유간이).’ 이들이 용서를 구하자 장강은 용서하고 평안을 찾았다.
황제는 큰 공을 세운 장강을 중용하려 했으나 양기의 반대에다 장영 등이 상소를 올리며 지역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자 더 근무토록 했다. ‘後漢書(후한서)’ 장영 열전과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실려 전한다.
‘끓는 물 속 개구리’란 말이 있다. 물이 끓는 통에 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닥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개구리는 솥 안의 물고기보다 족을 시간이 빨리 닥쳐도 유유히 헤엄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우리나라가 국내외 여건으로 성장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우성이다.
소득이 높아지자 세금을 펑펑 쓰고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만들어 낭비하는 경쟁을 한다. 미래세대는 이럴 줄도 모르고 좋아하다가 솥 안의 물고기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제도가 잘못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면 고하를 막론하고 장강 같은 지사가 나타나 바로잡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