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족이기성명書足以記姓名 – 글은 이름만 적을 수 있으면 족하다.
서족이기성명(書足以記姓名) – 글은 이름만 적을 수 있으면 족하다.
글 서(曰/6) 발 족(足/0) 써 이(人/3) 기록할 기(言/3) 성 성(女/5) 이름 명(口/3)
사람의 배움은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을 그만 두지 말라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옥은 닦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두 학자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단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란 속담대로 어떤 일을 하려면 당연히 그 방면의 실력을 닦아야 한다.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인데 자신이 해나갈 일에는 능통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은 기성명이면 족하다’란 속담은 제 성과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는 이야기로, 글공부는 모두 깊이 할 필요는 없고 앞으로의 실생활에 필요한 공부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결코 배움을 경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보다는 학식이나 이론만 앞세우는 태도를 비꼬는 말로 쓰이거나 반대로 文治(문치)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통치자의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됐다.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된다는 말은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좋아할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은 중국 楚漢(초한)의 쟁패전에서 통일 직전까지 갔던 項羽(항우, 기원전 232~202)가 더 많은 사람과 대적할 수 있는 병법을 배우겠다며 한 표현이다.
戰國七雄(전국칠웅)의 하나였던 楚(초)나라의 명문 출신 항우는 무인의 핏줄을 이어받아 용맹을 떨친 사람이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큼 매우 세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하다는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에 들어맞을 정도였다.
항우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배웠지만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별로 공부에 뜻이 없었다. 숙부인 項梁(항량)이 이를 보다 못해 그를 불러 꾸짖었다. 아무리 출중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학문을 게을리 하면 정작 필요할 때 써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항우는 대답한다. ‘글은 이름만 쓸 수 있으면 족하고, 칼은 한 사람만을 대적하는 것이니 배울만한 것이 못됩니다.
저는 많은 사람과 대적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겠습니다(書足以記姓名而已 劍一人敵 不足學 學萬人敵/ 서족이기성명이이 검일인적 부족학 학만인적).’ 그 말을 듣고 숙부 항량은 병법을 가르쳤다. 항우는 그러나 병법을 통달할 정도까지 배우지 못하고 기고만장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못 미치는 劉邦(유방)에 패했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미성년 자녀 양육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머리가 되든 말든 취미가 있건 말건 너도나도 공부를 시킨다는 이야기다. 자신 있는 분야를 잘 찾아 일찍부터 진로를 정해주는 교육제도가 더욱 절실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