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위화도 회군

■ 위화도 회군

■ 위화도 회군

위화도회군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사건이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우왕이나 최영의 뜻대로 요동을 점령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14세기 후반 새롭게 일어난 한족의 나라 명은 원을 북쪽 몽골지역으로 밀어냈으나 요동지방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요동에는 원의 지방 태수 나하추가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나하추가 명에 투항하면서 요동에 대한 근심은 사라지고 요동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명은 고려를 원의 뒤를 이은 자기들의 속국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1387년, 명나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공민왕이 원에게서 빼앗은 철령 이북의 함경도 땅이 자기들 땅이니 다시 내 놓으라는 서신을 전해왔다. 명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발끈한 우왕과 최영은 요동을 쳐서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 고려 내부 상황은 최영이 우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반면 최영을 견제 대상으로 여기고 있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요동정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 이유는 이긴다고 해도 최영의 입지만 강화시킬 것이며, 만약 진다면 이성계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위화도회군 이전 두 차례나 우왕과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했으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요동 진격을 명했다.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웠다.

첫째,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셋째,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에 나서면 그 틈을 노려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드라마에서 보면, 정도전이 이성계를 설득하여 위화도회군을 한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고려에 충성스러운 무장 출신인 이성계가 단독으로 위화도회군을 결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겠다는 야망이나 포부를 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럴만한 세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도전의 설득으로 이성계가 돌아섰고 이성계는 같은 급 사령관인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다. 이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고려에는 반역을 한 결과이지만, 새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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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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