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계의 등장
■ 이성계의 등장
고려 후기인 1250년경, 전라도 전주에서 스무 살 남짓의 이안사라는 사람이 고을 관기를 건드린 죄로 수령으로부터 문초(問招)를 당하게 되었다. 이에 이안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삼척까지 야반도주를 해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번 살던 곳의 수령이 삼척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오는 바람에 다시 식솔들을 거느리고 멀리 도망을 간 곳이 동북면(현재 함경남도 함흥부근)이었다.
이안사는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자로, 동북면에 정착해 1천여 호(戶)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때 세계를 제패한 몽고군이 이안사에게 투항하여 복속할 것을 요구하자, 이안사는 몽고에 투항하여 원제국의 관리가 되었다. 이안사는 이때부터 더욱 실력을 쌓아 동북면의 실력자로 크게 성장을 하였으니, 이 자가 바로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이로부터 100여년 후, 영원할 것 같던 원이 쇠약해지고 대륙 전역에 주원장 등이 일으킨 한족의 난이 일어나자, 동북면의 실력자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이자춘은 원나라가 머지않아 망할 것을 예견하고 원나라의 관리를 때려치우고 고려 공민왕에게 스스로 복속하여 고려 국적을 회복하였다. 고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고려군이 쇠약해지는 몽고군을 칠 때 동북면에서 협조해 줄 것을 명하였으며, 결국 공민왕의 동북면 회복 작전에 이자춘은 큰 공을 세워 동북면의 패권자가 되게 되었다.
공민왕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던 기철(원나라 기황후의 오빠)과 그 일당을 몰아내고, 이자춘의 도움을 받아 동북면을 회복하는 등 고려의 독립과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고려로 밀려들어오는 홍건적과 여진족에 왜구의 침입 등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의 화려한 정계 진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원나라에 쫒기던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고려는 대대적인 개경 수복작전을 펼치는데 이 때 이성계는 홍건적 수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등 대활약을 하여 변방의 무명 장수에서 일약 대스타로 발돋음하게 되고, 최영과 함께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명장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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