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2일 금요일

정약용과 마마신의 저주

■ 정약용과 마마신의 저주

■ 정약용과 마마신의 저주

정약용처럼 마마(천연두)와 악연을 맺은 사람도 흔치 않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던 데다가 별별 잡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성향이 서학에까지 관심을 두게 하여 그것이 일생을 고달프게 한 빌미가 되었지만, 이학(理學)에도 조예가 깊어 ‘마과회통’ 외에도 ‘의령’ 이라는 의서(醫書)를 지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위독했을 때나 순조가 위독했을 때에도 부름을 받았을 정도로 그는 당대에 명성을 날렸던 의학자였다.

하지만 정약용도 정작 자기의 자식은 살려내지 못했다. 그는 두 살 때 홍역을 치르고 일곱 살 때 천연두를 앓았는데 아주 순하게 앓아 얼굴에 흉터가 거의 남지 않았다. 다만 오른쪽 눈썹 위에 흉터 하나가 남아서, 마치 눈썹이 세 개인 것처럼 되어 스스로 호를 삼미자라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28세 되던 해부터 규장각에 근무하면서 최신 중국 의서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자 그때부터 홍역과 천연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듯하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에게 마마신의 저주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6남 3녀를 낳아 2남 1녀를 건지고 4남 2녀를 잃었다. 아무리 ‘자식농사 반타작 농사’ 라 하지만 잃은 아이가 살린 아이의 배나 되었으니.........

첫째 딸은 팔삭둥이였는데 부인 홍씨가 학질을 앓을 때 낳아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죽어버려 이름도 짓지 못하고 묻었다. 나머지 둘째 딸과 3남부터 6남까지 아들 넷은 모두 네 살 이전에 마마로 잃고 말았다.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