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회마을~병산서원 낙동강 따라 걷다
◇ 하회마을~병산서원 낙동강 따라 걷다
하회마을을 여행하는 방법은 한가지다. 애오라지 걸어야 한다. 마을에 들어갈 때부터 걸어야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병산서원까지 십 리 길을 걸어서 들어갔다지만, 걸음은 마을 왼쪽 어귀 병산서원에서 시작해도 족하다. 걸음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진다.
병산서원은 서애를 기리는 공간이다. 유홍준 전 청장이 서원 건축의 백미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곳으로, 지난해 전국의 서원 8곳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원 대청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만대루 너머로 병산과 낙동강이 절묘하게 시야를 채운다. 서원이 걸터앉은 산이 꽃뫼(화산)고, 서원이 이름을 받은 산이 낙동강 건너 푸르뫼(병산)다. 4월 산불로 검은 속살을 드러낸 푸르뫼가 눈에 밟혔다.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까지 산허리를 따라 오솔길이 나 있다. 2010년 조성된 ‘유교문화길’이다. 옛날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이었던 옛길로 4㎞ 길이다. 길은 인적이 드물어 한갓졌다. 오디 뒹굴어 길바닥이 새까맸고, 그 오디를 쪼려 후투티가 내려앉았다. 길섶의 고라니와 뱀이 인기척에 놀라 줄행랑을 쳤다. 10년 전에도 따라다녔던 낙동강이 다시 동행했다.
하회마을에 들어섰다. 이리 굽고 저리 휜 골목을 따라 기와집과 초가집이 늘어서 있다. 어찌 보면 심심한 풍경이다. 어지간한 집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대부분 문이 잠겨 있다. 이준용 문화관광해설사가 눈여겨봐야 할 장면 몇 개를 짚었다.
우선 담장. 원래 하회마을은 흙담만 있었다. 황토 곱게 개 담을 올렸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풍수에선 하회마을의 지형을 행주형(行舟形)이라 풀이한다. 배가 나아가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배가 무거우면 물에 뜰 수 없는 노릇. 하여 배를 닮은 마을에 돌을 들여선 안 되었다. 종종 보이는 돌담은 최근에 쌓은 것이다. 마을 안에 우물이 없었던 것도 배에 구멍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마을에 우물 13개를 팠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서애에 대한 후세의 복수였다고 한다.
마을 한복판의 삼신당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삼신당과 하회마을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하나 무속 신앙과 유교 공동체는 하회마을에서 하나처럼 섞인다. 하회별신굿탈놀이(사진 아래)가 600년이 훌쩍 넘었다는 삼신당 느티나무 신목 앞에서 시작한다. 마을 한쪽에는 종탑 옆에 기와 얹은 예배당도 있다. 삼신당도, 예배당도 모두 하회마을이다.
만송정 솔숲을 지나 백사장으로 나가면 새로 놓은 섶다리(사진 가운데)가 나타난다. 낙동강 건너편 우뚝한 절벽이 부용대다. 64m 높이라지만 벽처럼 서 있어 훨씬 높아 보인다. 섶다리를 건너면 옥연정사다. 귀향한 서애가 예서 머무르며 『징비록』을 썼다. 지금은 민박도 받는다. 이윽고 부용대에 올라선다. 산이 물을 얼싸안고 물이 산을 휘감아 도는 안쪽으로 마을이 들어앉아 있다. 더없이 평안한 풍경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