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력적인 악역 배우 박해준, 그의 처음과 끝은
◇ 매력적인 악역 배우 박해준, 그의 처음과 끝은
박해준에게는 악역배우라는 수식이 따른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로 그를 처음 안 사람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표현이다. 화목한 가정을 버리고, 욕망을 좇아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나쁜 남자 이태오를 실감나게 연기했으니까.
연극 무대에서 연기 잔뼈가 굵은 박해준은 영화 쪽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긴 후 악당 역할을 주로 했다. 코미디 영화 ‘탐정: 더 비기닝’(2015)과 ‘힘을 내요, 미스터리’(2019)에도 출연했지만, 그는 웃음 담당이 아니었다. 영화계에 그의 얼굴을 알린 ‘화차’(2012)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박해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1년 선배인 이선균의 권유와 추천으로 오디션을 봐 ‘화차’에서 사채업자(사진)를 연기했다. 덥수룩한 머리로 불량함을 강조했다. “좀 나와봐요. XX”처럼 경어와 욕설이 섞인 말투, 독기 품은 눈빛이 관객에게 서늘함을 안겼다. 박해준은 ‘화차’ 전까지 본명 박상우로 활동했는데, 함께 출연한 배우 조성하가 배우다운 이름 ‘박해준’을 지어줬다고 한다.
이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와 ‘독전’(2018), ‘악질경찰’(2019)에서 얼핏 외모만 봐도 악당인 인물들을 소화했다. ‘화이’에선 살인청부조직의 저격수 범수를, ‘독전’에선 마약밀매조직의 간부 박선창을, ‘악질경찰’에선 대기업 하수인 권태주를 연기했다. 조직이 몇 차례 물갈이 된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독종(‘독전’)이거나 살인하며 눈 한번 깜박하지 않는 냉혈한(‘악질경찰’)이었다. 외관상으로는 박선창과 권태주는 섬뜩하지만, 평면적인 악당이다. 나쁘게 타고난 사람처럼 악인이 되기까지의 사연이 세묘되지 않는다.
‘4등’의 광수는 다르다. 외형은 평범해도, 좀 더 입체적인 악인이다. 광수는 수영선수 시절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재능만 믿다 몰락한 인물이다. 불성실한 수영코치로 살던 그에게 만년 4등 준호가 나타난다. 광수는 처음엔 초점 잃은 눈으로 대충 지도하다 준호의 재능을 접하고선 눈빛이 바뀐다. 자신과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준호가 실현해줬으면 하는 욕망이 포개지며 폭력적이 된다. 그는 폭력에 반발해 운동을 접었으면서도 “(하기 싫을 때) 잡아주고 때려 주는 게 선생이더라”라며 폭력을 합리화한다. 비뚤어진 욕망을 애정이라고 착각한 결과다. 사연 있는 악인 광수는 현실적이어서 더 무섭다. 이태오와 닮은 꼴이다.
최근 박해준의 급부상은 선배 배우 김윤석을 연상시킨다. 김윤석은 2006년 영화 ‘타짜’에서 노름판의 저승사자 아귀를 연기하며 스타가 됐다. 마침 그는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 출연하며 여성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이태오처럼 부적절한 사랑으로 아내를 떠나는 나쁜 남자 하동규를 연기하면서다.
이태오와 하동규는 이혼과 재혼 끝에 빈털터리가 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김윤석은 ‘타짜’와 ‘있을 때 잘해’를 도약대 삼아 주연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악역을 넘어 다채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박해준도 김윤석의 길을 갈 것이다. 소슬함을 안기는 그의 악역 연기를 이제 보기 드물게 될지 모른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