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 토요일

고려와 조선의 치안담당은 누가?

■ 고려와 조선의 치안담당은 누가?

■ 고려와 조선의 치안담당은 누가?

고려시대에는 중앙군으로 2군6위가 있었다. 6위 중 ‘금오위’는 개경의 치안 담당을 주 임무로 하여, 우범지대의 정기적인 순검을 맡으며 치안유지를 담당했다. 그 후 ‘순검군’이라는 군대가 도성과 주요 지방에 설치돼 순찰과 치안 유지를 맡았는데, 고려 의종 때인 1167년에는 순검군 중 뛰어난 자를 뽑아 내순검이라고 부르며 궁궐 수비를 맡게 했다. 이들은 자줏빛 옷을 입고 활과 검으로 무장한 채 궁궐 밖에 배치되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까지 순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최씨 무신 정권 때는 밤에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야별초(夜別抄)라는 군대를 설치했다. 야별초가 폐지된 후엔 원의 제도를 따라 충렬왕 때 순마소를 설치했는데, 이 역시 도적을 잡고 난폭한 자를 다스리는 경찰 임무가 목적이었다. 순마소는 이후 순군만호부로 확대·개편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태종 때 순위부로 바뀌었다가 이후 의용순금사를 거쳐 의금부로 개편되었다. 이후 경찰 업무는 수도 경비를 맡은 5위에게 넘겨주고, 의금부는 주로 왕족의 범죄나 반역죄 등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에 대한 특별 재판을 담당했다. 사극을 보면 의금부의 금부도사가 역적을 잡으러 가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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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왕 성종 때 포도청이 생겨나면서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으로 지역을 나누어 수도권의 치안을 담당했다. 좌·우 포도청을 맡은 포도대장은 종2품 무관직이었다. 우리 속담 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게 되어 포도청에 잡혀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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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서양 여러 강대국들과 교류하게 되고, 1894년에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일본식 제도를 따라 좌·우 포도청을 합친 경무청이 새로 만들어 졌고, 오늘날의 경찰청과 같은 조직이 생겨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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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방 백성들의 치안은 누가 담당했을까?

고려와 조선시대엔 국왕을 대신해 각 고을에 파견된 수령(부사, 목사, 군수, 현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다. 사극에서 사또 또는 원님이라고 불리우던 사람들로서, 사법권·행정권·군사권을 가지고 지방의 치안을 맡아 독자적으로 처리했다. 중앙에서 파견되는 이 수령을 보좌하기 위해 지방 관리로 육방(六房: 이·호·예·병·형·공)을 두었는데, 이 중에서 군사실무를 맡았던 병방(兵房)과 법률·소송·형벌과 감옥에 관한 실무를 맡았던 형방(刑房)에서 오늘날의 경찰업무를 나누어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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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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