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씻을 세(氵/6) 귀 이(耳/0) 공손할 공(心/6) 들을 청(耳/16)
세상을 피해 산야에 묻혀 사는 隱者(은자)라 하면 대뜸 중국의 許由(허유)와 巢父(소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친구 사이라는 이들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堯(요) 임금 때 살았다는 전설에만 나온다. 아비 父(부)는 어른 경칭일 땐 보. 許繇(허요, 繇는 성할 요)라고도 하는 허유는 임금 자리를 맡아달라는 소리에 귀가 더럽혀졌다며 귀를 씻었다(洗耳). 속세를 떠나 나무에서 살았다는 소보는 그런 귀를 씻은 강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상류로 끌고 갔던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귀를 씻는다는 말이 세상과 완전 담을 쌓은 고집불통을 연상하나 여기에 공손히 듣는다(恭聽)란 말과 결합하려 쓰이면서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변했다.
西晉(서진)의 학자 皇甫謐(황보밀, 215~282, 謐은 고요할 밀)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사는 학덕이 높은 선비들을 모아 ‘高士傳(고사전)’을 저술했다. 두 은자가 등장하는 내용을 보자. 沛澤(패택)이란 곳에서 살던 허유는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동이 바르며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성군 요임금이 이런 훌륭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찾아가자 정치에 뜻이 없던 허유는 箕山(기산)이란 곳으로 숨었다. 요임금은 처음 허유가 겸손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다시 사람을 보내 九州(구주)의 장이라도 맡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허유는 한층 역겨워하면서 산 아래의 潁水(영수)라는 강가에 내려가 귀를 씻었다(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 /유불욕문지 세이어영수지빈). 濱은 물가 빈. 이 고장에 은거생활을 하던 친구 소보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 마침 이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허유의 이야기를 들은 소보는 쓸데없이 떠다니며 명예를 낚으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나무랐다. 강물에 귀를 씻었으니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다며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
귀를 씻는다는 말이 경청하는 뜻으로 바뀐 것은 元(원)나라 이후 잡극에서 사용됐다. 작가 關漢卿(관한경)이 關羽(관우)에 대해 쓴 ‘單刀會(단도회)’에선 ‘군후께서는 말씀하십시오. 소관은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請君侯試說一遍 下官洗耳恭聽/ 청군후시설일편 하관세이공청)’란 대사가 등장한다고 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의견을 내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현명해진다는 兼聽則明(겸청즉명)이란 말도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반대 측의 좋은 방안도 받아들여야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