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갚을 보(土/9) 원망할 원(心/5) 써 이(人/3) 큰 덕(彳/11)
사람은 태어나 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입고 산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는 특히 크다. 세상에는 온갖 인종의 사람도 많아 남의 도움을 받고서도 그 은혜를 잊거나 도리어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恩反爲仇(은반위구)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반면 남에게 해를 입었을 때는 조그만 것이라도 잊지 않고 언젠가는 갚으려 한다. 하지만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다시 원한을 사게 되어 끝없이 되풀이된다. 선인들은 순리로 이것을 풀어야 후환이 없다고 가르치며 ‘원수는 順(순)으로 풀라’고 했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했다.
여기에 더한 것이 원수를 갚을 때(報怨) 원한으로 하지 않고 덕을 베푼다(以德)는 이 성어다. 원수를 갚는 것이 끝없이 순환된다고 해서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인데 無爲(무위)의 老子(노자) 답게 ‘道德經(도덕경)’에서 깨우친다. 63장의 恩始章(은시장)에 나오는 말이다.
‘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말을 돌려 어렵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도를 지키면 천하의 어려운 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니 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라 했다. 禮記(예기)에 나온 대로 孔子(공자)도 형제와 친구의 원수는 갚되 바른 도로 갚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르쳤다.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以德報怨 何如/ 이덕보원 하여)?’라고 물었을 때 말한 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갚겠는가? 원한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마음으로 갚고, 은혜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이 구절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 실려 있다.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反哺之孝(반포지효)나 주인이 위험에 빠지자 길러준 개가 구했다는 獒樹(오수, 獒는 큰개 오)의 전설은 유명하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속담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지도급 인사들이 더하다.
정의를 위한다며 무리를 지어 싸우다, 조그만 이익이 생기면 어제의 동료들을 헐뜯는다. 조선의 黨爭(당쟁)이 그랬고 오늘의 정치인들도 이념 따라 원수같이 싸운다. 덕으로 갚기가 어렵다고 해도 원수로 갚는 以怨報怨(이원보원)으로는 편할 날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