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페이스북
◇ 소녀시대와 페이스북
10년 전 대중문화부에 소속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취재하던 때다. 당시 만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걸그룹 소녀시대 이야기를 꺼냈다. 소녀시대는 “오빠 나 좀 봐”라는 가사의 ‘Oh!’라는 노래로 가요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민을 털어놨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더는 소녀가 아니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론 이런 유의 노래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소녀시대 멤버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갑자기 소녀시대를 떠올린 건 최근 실리콘밸리 화제의 중심에 있는 기업 메타(전 페이스북)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자가 고령화되며 페이스북 성장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페이스북 주 사용층은 30대 이상이다. 10~20대의 이용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페이스북은 젊은 층의 유입을 늘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최근 내부 고발로 드러났듯,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도 젊은 사용자 유입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녀시대는 이후 ‘귀여운 콘셉트’를 벗어나 ‘걸 크러시’ 등 새로운 시도를 했고, 멤버들은 그룹 활동을 넘어 각자 연기나 뮤지컬 분야로 진출했다. 페이스북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소녀시대의 변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세계인 메타버스를 통해 젊은 층의 유입을 노리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이스북, 아니 메타가 이야기하는 메타버스가 현실화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이건 사기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메타의 도전에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다.
메타는 앞으로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수십조 원을 써야 할 것이다. 미래가 그들이 그리는 청사진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메타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노화해 세상에서 사라지느니 위험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대기업에서 조기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야심 차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중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과장일까.
자연스레 국내 기업들에 시선이 간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이 새로운 비전을 말하고 합종연횡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국내 산업계는 너무 조용하다. 특히 대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압박으로 옴짝달싹 못한다”고 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별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중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옆 나라 일본엔 그런 기업이 부지기수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머무르면 죽는다. 영원히 젊은 기업은 없다. 규제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기업도 앉아서 노화를 기다리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특파원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