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야사(野史)에는 세종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양녕대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우선 양녕대군의 세자폐위에 대해서도 여러 설(說)이 있다.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을 때 태종의 뜻이 세종(충녕대군)에게 있는 것을 알고,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하고 자리를 사양하니 태종이 곧 폐하여 충녕을 세웠다」 《자해필담》

「세자(양녕)의 계속된 비행을 태종이 몇 번 질책하자, 양녕대군이 이에 불만을 품고 태종에게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아버지(태종)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시면서 왜 저만 못하게 하시느냐”는 상소를 올리자, 이에 분노한 태종은 세자를 폐하여 이천군으로 귀양보내고 동생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었다」 《조선왕조실록》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양녕대군 스스로 충녕대군에게 양보하기로 결심하고 일부러 미친 짓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양녕대군은 세자를 포기하고 자유를 얻었으며 세종, 문종, 단종, 세조대까지, 당시로서는 장수한 69세의 나이까지 슬하에 10남 17녀를 두고 별 탈 없이 한 평생 잘 살았다. 하지만 양녕대군의 말로(末路)는 아주 추했다. 수없는 엽색행각을 마다않던 양녕대군은 급기야 자신의 며느리까지 범하는 등 인간 이하의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아들이 목을 매 자결할 정도였다.

양녕대군은 1453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편을 들어 그를 독려한다. 그리고 쿠데타 성공 후에 안평대군을 사사시키라고 간청까지 했다. 단종을 죽이라고 한 사람이 양녕대군이라는 설도 있다.

태종의 둘째 효령대군에 대해서도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양녕대군이 폐세자 되면 세자 자리가 자기에게 올 것이라는 생각에 품행을 더 단정히 하고 지내던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에게 양녕대군이 찾아가, 아버지 태종의 마음은 셋째 충녕대군에게 있으니 꿈 깨라는 말을 해, 이에 충격을 받아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효령대군은 슬하에 7남을 두었고, 생전에 손자 33명 증손자 109명으로 후손이 아주 번성하였고, 그는 91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효령대군은 생전 태조,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8명의 왕의 시대를 거쳤다. 그러나 효령대군도 양녕대군처럼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단종폐위 때 수양대군 편을 들어 후세의 유학자들로 부터 많은 지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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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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