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증불고破甑不顧 - 깨진 시루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깨끗이 단념하다.
파증불고(破甑不顧) - 깨진 시루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깨끗이 단념하다.\xa0 \xa0\xa0 \xa0
깨뜨릴 파(石/5) 시루 증(瓦/12) 아닐 불(一/3) 돌아볼 고(頁/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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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정집에서 시루나 독을 구경하기 힘들다. 시루는 떡을 찌는데 쓰는 둥근 질그릇으로 아래쪽에 물이 잘 빠지도록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독은 장독을 먼저 떠올리듯 간장, 된장이나 술, 김치 등을 보관하는 큰 질그릇이다. 떡 방앗간이나 냉장고가 편리한 요즘은 속담 등 옛말에서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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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에 물 퍼붓기’는 구멍 뚫린 시루에 물 붓는 족족 새 버리니 헛일이다. 如甑汲水(여증급수)로 한역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속담과 똑 같다. 아무리 힘이나 밑천을 들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을 비유할 때 적당한 비유다. 시루가 들어가는 또 다른 성어 깨진 시루(破甑)는 돌아보지 않는다(不顧)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깨끗이 단념하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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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린 孟敏(맹민)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자가 叔達(숙달)인 맹민이 어느 때 시루를 지고 가다 떨어뜨려 깨졌는데 뒤돌아보지도 않고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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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명사 郭泰(곽태)란 사람이 연유를 물었더니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甑以破矣 視之何益/ 증이파의 시지하익)?‘하고 답한다. 곽태는 맹민의 대범하고 과단성 있는 행동에 학문을 권유해 훗날 명성을 떨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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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 떨어뜨린 시루 墮甑不顧(타증불고)나 맹민의 자를 써 叔達破甑(숙달파증)이라고도 쓴다. 처세 격언서 ’增廣賢文(증광현문)‘에는 ’이미 떨어져 깨진 시루 되돌아본들 어찌 하겠는가(瓦甑旣墮 反顧何爲/ 와증기타 반고하위)‘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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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에 관해서는 반대의 이야기가 있다. 옹기장수가 독을 팔러 장에 가다가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많이 팔아 큰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기분 좋아 기지개켜다 지게를 넘어뜨려 독이 왕창 깨졌다.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을 ‘독장수 구구’, 甕算(옹산)이라 한다. ‘독을 보아 쥐를 못 친다’는 말은 投鼠忌器(투서기기)라 하여 해가 되는 것을 없애버려야 하나 자기에게 손해가 올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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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독을 깨뜨린 破甕救兒(파옹구아) 일화는 北宋(북송)의 司馬光(사마광)이 어릴 때부터 비범함을 일러준다. 같이 놀던 꼬마가 물이 가득한 독에 빠졌는데 어른들이 망설이는 사이 돌로 깨뜨려 구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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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세월이 영원히 계속되는 줄 아는 사람은 꽃이 지지 않을 것이라며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을 모른 척 한다. ‘죽은 자식의 귀 모양 좋다 하지 말라’란 속담이 잘 말해준다. 이미 잃어버렸거나 다 틀어진 일을 놓고 자랑하거나 아까워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과거에 연연해서 좋은 일이 다시 올 것만 기대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가슴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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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도 소리는 남지 않고(風過而竹不留聲/ 풍과이죽불류성), 못 위로 기러기가 날아간 뒤 그림자가 남을 리 없다(雁去而潭不留影/ 안거이담불류영).’ 菜根譚(채근담) 어록이다. 이미 끝난 일은 깨끗이 잊는 사람이 새 출발을 잘 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