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쾌등오與噲等伍 - 번쾌와 더불어 나란히 있다니, 한미한 자와 같이 하니 부끄럽다.
여쾌등오(與噲等伍) - 번쾌와 더불어 나란히 있다니, 한미한 자와 같이 하니 부끄럽다.\xa0 \xa0
줄 여(臼/7) 목구멍 쾌(口/13) 무리 등(竹/6) 다섯사람 오(亻/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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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噲(쾌)란 어려운 글자는 樊噲(번쾌)를 가리킨다. 번쾌가 등장한 성어 羞與噲伍(수여쾌오)에서 나왔듯이 미천한 자와 한 무리가 된 자신이 부끄럽다고 韓信(한신)이 한탄했던 것과 출전과 뜻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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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漢(한)나라 劉邦(유방)을 도와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한신이 어찌 개백정 출신의 번쾌와 더불어(與噲)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等伍) 하며 한탄한 데서 나왔다. 처음 項羽(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중용되지 못하자 유방에 온 뒤 중신 蕭何(소하)의 적극지원으로 대장군이 되어 전장에서 무적이었고 齊王(제왕)에 까지 올랐던 한신인 만큼 그렇게 수치를 느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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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잡던 백정이었다고 번쾌를 함부로 보면 안 된다. 유방의 장인이 관상을 잘 봐 딸 呂雉(여치)와 맺게 한 것과 같이 번쾌에는 동생 呂嬃(여수, 嬃는 맞누이 수)를 줬다. 高祖(고조)와 동서이고 후에 呂后(여후)의 제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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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보다 張飛(장비)가 연상되고 산적 두목과 같은 겉모습과 달리 윗사람에 예의가 바르고 아랫사람들도 잘 대우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유방이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용감하게 포위를 뚫어 여러 번 구조했고 또 언변도 남달라 설득력이 있었다. 결정적인 것이 鴻門之宴(홍문지연)에서 항우와 함께 있던 유방을 번쾌가 칼춤을 추며 방어하여 구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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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에서 유방을 죽이려는 계략을 알고 칼과 방패를 들고 들어가 막아낸 樊噲龍楯擁(번쾌용순옹)이 그것이고, 관련된 고사가 더 있다. 고위급 회담장에 우락부락한 사나이가 항우 앞에 섰다. 항우가 가상히 여겨 큰 술잔을 내리자 사나이가 ‘한잔 술을 어찌 사양 하겠습니까(卮酒安足辭/ 치주안족사, 卮는 잔 치))‘ 하며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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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이니 전장에서 계급이 무시되고 후에 한신과 번쾌가 동급의 제후로 봉해졌다. 한신이 번쾌의 집을 지날 때 깍듯이 대했으나 집을 나설 때 ’살아 생전 번쾌와 같은 반열이 되다니(生乃與噲等為伍/ 생내여쾌등위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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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지날 정도로 胯下之辱(과하지욕)의 치욕도 인내할 줄 알고, 평정했던 제나라의 왕에 오르기까지 승승장구했던 한신은 거기까지였다. 천하를 삼분하라고 한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의 계책을 의리에 어긋난다며 물리친 결과는 兎死狗烹(토사구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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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과거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자신의 출신과 잘 나갈 때의 영광만 생각하고, 상대의 이전 별 볼 일 없었던 이력만으로 발전한 현재를 잊으면 낭패를 당한다. 경쟁자는 하루하루가 달라지니 刮目相對(괄목상대)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