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사고 출신 민사고 교사 황소희, 폐교 움직임에 격정 토로
◇ 민사고 출신 민사고 교사 황소희, 폐교 움직임에 격정 토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 필요… 민사고 같은 학교 또 만드는 건 어려워”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가 개교 25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한복을 입고 영어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현 정부가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와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등을 모두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키로 하면서 폐교 가능성이 불거졌다. 민사고는 강원도 횡성에 있다.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원도 학생만 선발해야 한다. 전국에서 영재를 모집해 지도자로 양성하겠다는 학교의 목표와 그 존재 의미가 훼손된다.
민사고는 공교육과 완전히 차별화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 교사는 모두 석·박사 학위 소지자로, 교사 1명당 학생 수는 5~7명에 불과하다. 수업의 밀도는 물론, 수준도 높은 대신 학비가 기숙사비 포함 연간 2800만원 내외로 비싸다. 일각에서 ‘특권 교육’ ‘귀족 학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평등한 교육’을 위해 민사고는 사라져야 맞는 걸까. 지난달 24일 민사고 교사 황소희 선생님을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민사고를 학생과 교사 입장에서 모두 경험해본 유일한 사람이다. 2007년 민사고를 졸업하고, 2015년 모교로 돌아와 지금까지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 필요하다”
언론과 만남을 수차례 고사했던 그는 이날 A4 용지 7장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가져왔다. 황 선생님은 민사고를 ‘엘리트 교육’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의식한 듯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의(代議) 민주주의에선 다른 이들을 대신해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질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이른바 엘리트다. 하지만 이들을 기르는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엘리트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줄어들고, 특권만 누리려는 ‘특권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황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는 “사회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으니까, 마치 엘리트가 나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라며 “(이를 바꾸려면)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기관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사고 설립자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은 세계적인 지도자 양성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영국 이튼칼리지를 모델로 삼아, 1000억원 넘는 사재를 쏟아부었다. 파스퇴르유업이 1998년 부도가 나면서 재정 지원이 끊기기 전까지는 전교생이 무상 교육을 받았다. 최 전 회장은 강연 때마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고 했다.
-“좋은 교육 늘려야지 왜 없애나”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민사고의 교훈(校訓)이다. 황 선생님은 “요즘처럼 의무보다 권리를 챙기려는 시대에 조국이니, 민족 같은 얘기를 꺼내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그나마 이런 문화와 전통이 계승되는 민사고니까 가능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황 선생님은 실제로 그런 교육을 받았을까. 그는 경기도 부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민사고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하루 종일 토론하던 것”이라고 했다. ‘왜 대학을 가야 하느냐’ ‘고시는 꼭 비판받아야 마땅한가’ 같은 주제로 온종일 열을 올렸다.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행복은 스스로 옳고,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며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는 교육에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없애려고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학교를 한번 없애고 나면, 다시 만드는 건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