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준과 동의보감 1편
■ 허준과 동의보감 1편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허준(許浚:1539-1615)은 신묘한 의술로 박애(博愛)를 실천한 ‘의성(醫聖)’이었고,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 기록에서 그의 일생을 추적하기에는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허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대부분은 소설과 드라마를 통한 것이 많다. 허준이 왜 의학을 선택했고, 어떤 과정을 밟으며 공부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왔던 유의태라는 스승도 허구의 인물이고, 허준이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해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다. 소설을 비롯하여 민간전승에서는 그가 경상도 산음현의 전설적 의사인 유의태(柳義泰)라는 인물에게서 의술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의태가 숙종 치세기의 한의사라는 설이 있지만 실존(實存) 여부 확인도 불가능하다. 만약 유의태가 숙종 치세기의 한의사라 한다하더라도 광해군대에 살았던 허준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또, 그와 비슷한 동명이인(同名異人)인 한의사 유이태(劉以泰, 또는 劉爾泰)가 있기는 하나, 그도 정조 치세기의 한의사로서 허준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유의태 또는 유이태라는 이름의 의원은 허준보다 100년 이상 늦은 시기에 활동했으므로 허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으로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지낸 허곤(許琨)이 할아버지이며, 아버지는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역임한 허론이다. 허준의 생모였던 영광 김씨는 첩이기는 했으나 천출은 아니고, 양반 가문의 서녀(庶女)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법 권세 있는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란 허준은 “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두루 밝았다.”고 전해진다. 훌륭한 가문의 배경 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허준의 이복 형 허옥(許沃)은 임금의 신변보호와 궁궐수비를 책임지는 내금위에 있었고, 동생 허징(許澄)은 서자(庶子)이면서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 교리 등 내직을 지냈고, 선조 때 영의정이었던 노수신(盧守愼)의 사위가 되었다.
허준은 어릴 때 경상도 산청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서자였지만 차별받지 않고 명문가 출신답게 좋은 교육을 받았다. 허준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떤 계기로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신분제 사회에서 서자(庶子)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당시 중인이나 서얼들의 업(業)으로 되어 있던 의학(醫學)의 길을 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허준은 1574년(선조 7년) 그의 나이 29세 때 상당히 늦은 나이에 궁중 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의과를 치르지 않고 천거 받았다는 설도 있음).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