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상풍패속傷風敗俗 –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 

상풍패속傷風敗俗 –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 

상풍패속(傷風敗俗) –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xa0

다칠 상(亻/11) 바람 풍(風/0) 패할 패(攵/7) 풍속 속(亻/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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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잘못 쏘여서 생기는 병이 傷風(상풍)이지만 풍속을 해치는 것도 된다. 건전하던 풍속이 쇠퇴하면 敗俗(패속)이다. 풍속을 문란하게 하거나 부패한 풍속을 이르는 이 말은 일상에 자주 쓰이는데 그 연원은 의외로 의미가 깊다.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가 이 말을 황제에 올리는 글에 썼다가 목숨이 달아날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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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친구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당나라에선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두 사람이 들어간다. 두 사람은 종래의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騈文(변문, 騈은 쌍말 변)에서 성인의 도를 담은 古文(고문)을 중시해야 한다는 문체개혁을 주창하여 宋代(송대) 이후 중국 산문의 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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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의 여러 폐단에 대해서 날카로운 의견을 논문이나 서신을 통해 피력하여 문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에게서 비롯된 성어도 많다. 유종원의 죽음을 애도하여 落穽下石(낙정하석)의 세태를 한탄했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蠅營狗苟(승영구구)라고 욕했다. 글 읽기를 권장하는 燈火可親(등화가친)이나 어리석은 자에게 묻는다는 問道於盲(문도어맹)도 한유의 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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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당시 성행하던 불교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11대 황제 憲宗(헌종)이 한술 더 떠 釋迦牟尼(석가모니)의 유골이라며 궁내에 모시려하자 이것에 반대하여 ‘論佛骨表(논불골표)’를 올렸다. 불교는 외국에서 전래된 것으로써 그것을 믿었던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단명하고 말았다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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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이러한 일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방으로 전파될 것입니다(傷風敗俗 傳笑四方/ 상풍패속 전소사방).’ 헌종은 글을 읽고 대로하여 그의 목을 베려고 했다. 한유는 재상 裵度(배도)의 변호로 가까스로 목숨은 건지고 지방으로 좌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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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의 잘못에 대해 바른 말로 직언하기는 어렵다. 지난 정권 때 장관들의 국무회의에선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적기에 바빴다고 해서 지탄을 받았다. 현 정부에서도 새로운 정책을 펴는데 자주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전문적인 것을 밀고 가는데 대한 위험성을 따져보고 직언하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닌지 우려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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