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 토요일

조선시대 통역사, 역관譯官

■ 조선시대 통역사, 역관譯官

■ 조선시대 통역사, 역관(譯官)

조선시대에도 외국어 교육이 있었을까? 주변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시대에도 당연히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시험 중 기술관을 뽑는 잡과(雜科)에 역과(譯科)를 두어 외국어 통역관을 뽑았다. 외국어 공부를 위한 학습교재가 있었고, 외국어 전문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도 있었으며, 통문관지(通文館志)라는 책에는 이름을 날린 역대 역관(譯官)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의 중심 외국어는 당연히 중국어였다.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 중국에 파견되는 사절단을 수행하는 역관들을 중심으로 중국어 학습이 이루어졌다. 지식인층 중 상당수도 중국어를 능숙히 구사하였다. 세종시대의 학자 신숙주는 중국어뿐만 아니라, 여진어, 몽고어, 일본어 에도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은 초기부터 일본과 교린정책에 입각한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정보 수집을 위해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외국어전담관청인 사역원에서는 일본어 역관을 교육하기 위한 일본어 학습용 교재를 간행하기도 했다. 1415년(태종 15) 사역원이 설치된 후 처음에는 한학(漢學)과 몽학(蒙學)만 개설되었다가 나중에 왜학(倭學)이 개설됐기 때문에 일본어를 ‘신어(新語)’ 또는 ‘신학(新學)’이라 부르기도 했다.

역관은 조선시대 외국어통역을 전담하는 관리를 말한다. 요즈음의 외교관이나 통역사와 같은 역할을 한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역원(司譯院)에서 집중적으로 역관을 양성했다. 사역원에서는 4대 외국어인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를 배웠는데, 한학청(漢學廳), 몽학청(蒙學廳), 청학청(淸學廳), 왜학청(倭學廳)이라 불리는 각 관청에서 외국어학습을 전담하였다. 또 우어청(偶語廳)이라 하여 하루 종일 외국어로만 대화를 주고받도록 한 순수 회화 교실도 있었다. 당시 제1외국어는 당연히 중국어였고, 사역원에서도 한학청의 규모가 가장 컸다.

기술직이 천시됐던 조선시대의 역관은 신분상 중인에 속하였다. 중인 신분은 세습되었으므로 대개 역관은 한 가문에서 연이어 배출되는 일이 많았다. 역관은 추천에 의하여 심사를 받고 적격자로 판정을 받으면 사역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외국어 학습을 하였다.

그러나 사역원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역관이 되는 것은 아니었고, 엄격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매월 2일과 26일에는 시험을 쳤다. 3개월에 한 번씩 지금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원시(院試)를 쳤다. 수련 과정을 거친 후 과거시험인 잡과(雜科) 중 역과에 응시했고, 역과의 초시와 복시에 모두 통과해야만 역관이 될 수 있었다. 역관이 조선시대의 외교정책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 학습을 실시하고, 탄탄한 교육과정과 시험제도를 통해 우수한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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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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