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앞 전(刂/7) 법도 도(广/6) 묘금도 류(刂/13) 사내 랑(阝/7)

언뜻 이 성어를 들으면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다는 前途有望(전도유망)을 연상하기 쉽다. 지난번(前度)의 유랑(劉郞)이라 해도 뜻은 막막하다.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옛 고장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유랑이란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대체로 둘이 등장하는데 중국 後漢(후한) 2대 明帝(명제) 때의 劉晨(유신)과 中唐(중당) 때의 유명시인 劉禹錫(유우석)이다.

"

먼저 유신은 친구와 함께 약초를 캐러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두 미인을 만나 부부로 살았다.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도 자신들의 7대손이었단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보니 미인들은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선녀들이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劉義慶(유의경)이 쓴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

유우석은 조정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지방으로 떠돌다 長安(장안)의 도관인 玄都觀(현도관)을 찾았다. 복숭아꽃으로 이름난 이 곳을 보고 시를 지었다.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현도관리도천수 진시유랑거후재).’ 이 시가 고관대작을 풍자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유우석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10여년이 지나 올라왔다. 현도관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종도도사귀하처 전도유랑금우래).’

이런 유래가 이채로웠던지 우리의 고전에도 다수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韓脩(한수, 1333~1384, 脩는 길 수)는 天壽寺(천수사)라는 절에서 연꽃을 구경하며 읊는다.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몇 번이나 새로웠나,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은 노인 됐네(花開花落幾回新 前度劉郞今老人/ 화개화락기회신 전도유랑금로인).‘ 조선 중기의 학자 崔岦(최립, 1539~1612, 岦은 산우뚝할 립)은 ’簡易集(간이집)‘에서 노래한다. ’선인은 옛날에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고, 유랑도 한번 떠났다가 십 년 만에야 돌아왔네(仙人昔有去家千 前度劉郞亦十年/ 선인석유거가천 전도유랑역십년).‘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추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이 말을 달리 再度劉郞(재도유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옛 시조에서 읊었듯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가요에 등장하는 ‘고향에 찾아 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닐‘ 경우가 대다수다. 뽕나무밭이 아파트촌으로 워낙 빨리 변하는 세태에다 삭막해진 사람들의 성정 탓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