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앞 전(刂/7) 법도 도(广/6) 묘금도 류(刂/13) 사내 랑(阝/7)
언뜻 이 성어를 들으면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다는 前途有望(전도유망)을 연상하기 쉽다. 지난번(前度)의 유랑(劉郞)이라 해도 뜻은 막막하다.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옛 고장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유랑이란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대체로 둘이 등장하는데 중국 後漢(후한) 2대 明帝(명제) 때의 劉晨(유신)과 中唐(중당) 때의 유명시인 劉禹錫(유우석)이다.
"먼저 유신은 친구와 함께 약초를 캐러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두 미인을 만나 부부로 살았다.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도 자신들의 7대손이었단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보니 미인들은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선녀들이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劉義慶(유의경)이 쓴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유우석은 조정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지방으로 떠돌다 長安(장안)의 도관인 玄都觀(현도관)을 찾았다. 복숭아꽃으로 이름난 이 곳을 보고 시를 지었다.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현도관리도천수 진시유랑거후재).’ 이 시가 고관대작을 풍자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유우석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10여년이 지나 올라왔다. 현도관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종도도사귀하처 전도유랑금우래).’
이런 유래가 이채로웠던지 우리의 고전에도 다수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韓脩(한수, 1333~1384, 脩는 길 수)는 天壽寺(천수사)라는 절에서 연꽃을 구경하며 읊는다.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몇 번이나 새로웠나,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은 노인 됐네(花開花落幾回新 前度劉郞今老人/ 화개화락기회신 전도유랑금로인).‘ 조선 중기의 학자 崔岦(최립, 1539~1612, 岦은 산우뚝할 립)은 ’簡易集(간이집)‘에서 노래한다. ’선인은 옛날에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고, 유랑도 한번 떠났다가 십 년 만에야 돌아왔네(仙人昔有去家千 前度劉郞亦十年/ 선인석유거가천 전도유랑역십년).‘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추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이 말을 달리 再度劉郞(재도유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옛 시조에서 읊었듯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가요에 등장하는 ‘고향에 찾아 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닐‘ 경우가 대다수다. 뽕나무밭이 아파트촌으로 워낙 빨리 변하는 세태에다 삭막해진 사람들의 성정 탓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