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구전문사求田問舍 - 논밭을 구하고 집을 사려 문의하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딴 일은 등한

구전문사求田問舍 - 논밭을 구하고 집을 사려 문의하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딴 일은 등한하다.

구전문사(求田問舍) - 논밭을 구하고 집을 사려 문의하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딴 일은 등한하다.

구할 구(氺/2) 밭 전(田/0) 물을 문(口/8) 집 사(舌/2)

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옷과 음식과 집, 衣食住(의식주)는 최소라도 갖춰야 한다. 자급자족하던 이전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어도 인구가 늘어나고 더 편하게 되려는 욕심이 가미되고서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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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최소한에 만족하거나,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생활에 자족하는 성인은 소수였다. 예나 이제나 주변에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땅을 구하고(求田) 더 큰 집을 찾으러 다니는(問舍)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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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중국 魏蜀吳(위촉오)의 정사인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에서 劉備(유비)가 한 말로 나온다. 유비가 세력을 떨치기 전 曹操(조조)에 쫓기다 의지하게 된 곳이 중원의 荊州(형주)에 있던 劉表(유표)의 막하였다. 유표는 각지의 세력이 요동칠 때 우유부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중립을 지키며 침착하게 통치하여 형주를 안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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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여기 머물면서 諸葛亮(제갈량)을 얻는 등 도움을 받았다. 어느 때 許汜(허사, 汜는 지류 사)라는 사람과 천하의 인물들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허사도 呂布(여포)의 밑에 있다가 그의 사후 유표에 의탁하고 있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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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가 조조의 막하에서 계교를 써서 여포를 제거한 陳登(진등)을 평하며 호기를 떨치며 안하무인인 사람이라고 했다. 吳(오)나라의 군사도 물리쳐 명망이 높았던 진등을 혹평하자 유비가 그 연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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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는 이전 전란을 피해 진등을 찾았는데 ‘자신은 높은 침대에 누워 있고, 손님을 상 아래에 앉게 했다(自上大床臥 使客臥下床/ 자상대상와 사객와하상)‘고 했다. 유비가 허사를 향해 집안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며 세상을 구해야 할 사람이 ’전답을 기웃거리고 집이나 사려고 다니며 이렇다 할 뜻도 세우지 않으니(而君求田問舍 言無可采/ 이군구전문사 언무가채)‘ 꺼렸을 것이라고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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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차츰 더 좋은 환경과 호사를 원하는 것은 상정이다. 하지만 높은 직위에 있었던 자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횡포가 많았을 것은 짐작된다. 나라는 망하게 생겼는데 벼슬아치들은 불한당들과 한 통속이 되어 구전문사한다는 말은 역사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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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의 격차가 현격해진 오늘날은 어떨까. 억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은 없어졌더라도 고위 공무원들의 재테크는 놀랄만하고, 땅 부자나 고급 아파트는 치솟기만 한다. 서민들을 좀 더 잘 살게 한다면 누가 이들을 나무라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