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지날 과(辶/9) 물 하(氵/5) 꺾을 절(扌/4) 다리 교(木/12)
아주 비장한 각오를 말할 때 자주 쓰는 성어가 있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破釜沈舟(파부침주)다. 죽기 살기로 싸운 項羽(항우)의 고사에서 왔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나서(過河) 다리를 부숴버린다(折橋)는 이 말은 의미가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목적을 이룬 뒤에는 도와준 사람의 은공을 잊어버리는 배은망덕을 가리킨다. 過河拆橋(과하탁교, 拆은 쪼갤 탁)로도 쓰는 이 말과 유사한 성어도 제법 된다.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은 뒤엔 통발의 고마움을 잊어버린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 筌은 통발 전),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兎死狗烹(토사구팽) 등이 유명하다.
중국 隋(수)나라 때부터 본격 시행된 과거제도는 관리로 채용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수 정예를 선발하여 합격자는 전원 관리로 채용돼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폐해도 드러났다. 元(원)나라 順帝(순제) 때 徹理帖木耳(철리첩목이)라는 대신이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학문이 깊은 사람이 드물고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경학에 정통했던 伯顏(백안)은 적극 찬성했지만 참정 許有任(허유임) 등은 극렬 반대했다. 과거를 폐지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벼슬길이 막혀 원한이 이어진다고 하면 급제한 사람들 중에 실제 쓸 만한 사람은 없다고 맞섰다. 계속하면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것은 과거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왕은 논쟁을 그치게 하고 과거폐지에 관한 조서를 기초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선 문무백관들을 소집하여 가장 반대가 심했던 허유임에게 낭독하게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 공손히 조서를 읽었다. 조회를 마치고 힘없이 나가는 허유임에게 한 사람이 놀렸다.
‘참정 그대는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 꼴이 됐군요(參政可謂過河折橋者矣/ 참정가위과하절교자의).’ 그렇게 반대하다가 돌아선 행동을 비웃은 것이다. 明(명)의 宋濂(송렴) 등이 편찬한 ‘元史(원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기를 벗어나거나 출세를 하고 난 뒤에는 모두 자신이 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세태일수록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더욱 돋보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