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루담제上樓擔梯 - 다락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상루담제(上樓擔梯) - 다락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윗 상(一/2) 다락 루(木/11) 멜 담(扌/13) 사다리 제(木/7)
위험한 높은 곳에 사람을 올려놓고(上樓) 사다리를 없애 버린다면(擔梯) 올라간 사람은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쁘게 이용하지 않고 지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절박감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게 하는 길잡이도 될 수 있다. 또 반대로 높은 곳에 많은 것을 숨겨 놓고 아래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면 위의 사람들은 욕심이 많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성어가 上樓擔梯다.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東晋(동진)의 8대 왕 簡文帝(간문제) 때의 일이다. 정치가이자 장군인 桓溫(환온)이란 사람이 蜀(촉)을 평정한 뒤로 더욱 세가 막강해지자 왕이 견제하기 위해 학식이 뛰어난 殷浩(은호)에 중책을 맡겼다. 둘은 죽마고우였으나 왕의 의도대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적이 됐다. 은호가 호족을 막기 위해 출병했다가 말에서 떨어져 참패하자 환온이 규탄상소를 올려 귀양가게 되었다. 은호가 왕을 원망하며 말했다. ‘사람을 백 척 다락에 올라가게 해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구나(上人箸百尺樓上 儋梯將去/ 상인착백척루상 담제장거).’ 箸는 젓가락 저와 붙일 착, 儋은 擔과 같이 멜 담. 우리 속담을 모은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같은 뜻으로 登樓去梯(등루거제)라 쓰고 있다.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은 뒤 주도권을 잡는 上屋抽梯(상옥추제)는 三十六計(삼십육계) 중의 계책이지만 실제 諸葛亮(제갈량)을 다락에 올려놓고 계책을 구하는 劉琦(유기)의 이야기가 ‘三國志(삼국지)’에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성어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사어로 만든 ‘세습귀족’에 대해 젊은 층들이 더 실감한다. 개발연대에 손쉽게 부를 일궜거나 권력을 잡은 이들이 그것을 자식들에게만 물려주고 다른 사람이 넘겨 볼까봐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대졸 실업자가 부지기수인데도 대기업 노동조합은 높은 벽을 쌓고, 세대 간 갈등이 더 심화되기 전에 튼튼한 사다리를 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