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고려 공민왕은 어떻게 왕이 됐을까?

■고려 공민왕은 어떻게 왕이 됐을까?

■고려 공민왕은 어떻게 왕이 됐을까?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 당시 고려는 원(몽고)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이다.고려사에는 공민왕의 형인 충혜왕이 기행을 일삼다가 원에서 온 사신들에게 구타당한 후 원으로 납치 · 귀양 가서 죽임을 당한 비운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충혜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충혜왕의 뒤를 이어 충목왕과 충정왕이 된다. 충목왕은 8살의 나이로 즉위했고, 어린 왕의 뒤에서 충목왕의 어머니(충혜왕의 부인)이자 쿠빌라이 칸의 딸이었던 원나라 덕녕공주가 섭정하면서 정치를 주도했다.

층목왕이 4년 뒤 후사도 없이 어린 나이로 죽자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이 12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충정왕의 생모는 원의 공주가 아닌 고려인(高麗人) 희비 윤씨였다. 또 다시 어린 왕이 즉위하자, 섭정자리를 놓고 충혜왕의 정비인 덕녕공주와 충정왕의 생모인 희비 윤씨 사이에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덕녕공주는 충혜왕의 첫 번째 부인이라는 명분으로 섭정을 이어가지만, 결국 실권은 희비 윤씨가 가지게 된다.

충목왕에 이어 연달아 어린 왕이 즉위하자, 충목왕 말엽부터 생모 희비 윤씨 세력과 환관의 횡포가 심해졌고, 특히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기황후의 오빠 기철 일파의 전횡은 매우 심각했다. 그 당시 국제정세는 원나라가 흔들리면서 주원장을 필두로 한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일본은 남북조시대의 혼란기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거의 상실되자 이 틈을 탄 왜구의 출몰이 대단히 심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면서 충정왕의 어머니 희비 윤씨가 국정을 농단하자, 고려 내부에서는 충혜왕의 동생이자 충정왕의 숙부였던 강릉대군 왕기(훗날 공민왕)에게 민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려의 중신들까지도 ‘지금 왕으로는 안 되겠으니 왕을 강릉대군으로 바꿔달라’ 고 원나라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아마 충정왕의 친모가 원나라 공주 출신이었다면 신하들이 왕을 바꿔달라는 요구는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나라는 고려의 간절한 요청에 결국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공민왕을 즉위시킨다. 그리고 충정왕은 바로 강화도로 유배 되고, 이듬해 16세의 나이로 독살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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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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