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뱃대 길이는 신분과 비례
■ 담뱃대 길이는 신분과 비례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로,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다. 처음에는 ‘담바고’ ‘남령초’ 라 부르다가 ‘남초’ ‘연초’ 라고 불렀다. ‘담바고’는 담배를 뜻하는 타바코라는 발음에서 유래하였고, ‘남령초’는 남쪽 나라에서 들어온 신령스러운 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17세기 초엽에는 담배를 약초로 간주하였고, 흡연인구가 차츰 늘어나 담배가 기호품으로 정착한 뒤에도 약초라는 생각은 여전하였다.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은 살충 효능을 갖고 있어서 담배를 담아 두었던 물을 농작물에 뿌려 이용하기도 했으므로 약초로서의 인식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츰 흡연의 해로움을 깨닫게 되어, 성호 이익은 ‘냄새가 나빠 재계하고 신을 접할 수 없는 것’ ‘재물을 소모하는 것’ ‘할 일이 많은 데도 상하노소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등으로 해가 더 크다고 하여 흡연의 10가지 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의 보급 속도는 매우 빨랐다.
18세기 말엽에 쓰여진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의하면, ‘비천한 자는 존귀한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고 하였고, ‘조관들이 거리에 나갈 때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하기를 심히 엄하게 하며, 재상이나 홍문관 관원이 지나가는데 담배를 피우는 자가 있으면 우선 길가의 집에다 구금시켜 놓고 나중에 잡아다가 취조한다’ 고 되어 있다.
담배가 처음 도입되어 보급된 17세기는 예와 명분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상놈이 양반 앞에서, 아이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 문화가 형성되었고, 흡연행위는 사회적 권위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이는 담배통과 입에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고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를 연결하는 설대로 구성되어 있고, 설대가 긴 것을 장죽, 설대가 없거나 짧은 것을 곰방대라 불렀다. 처음 일본에서 들어왔을 때는 담배통도 작고 설대도 짧았는데, 18세기 풍속도를 보면 이미 담배통이 커진 장죽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장죽은 혼자서 담배통에 불을 붙이면서 물부리를 빠는 것이 어려우므로 불을 붙이는 하인이 있어야만 했다. 즉 양반층은 장죽을 일반 상민은 곰방대를 애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담뱃대 재료도 재산이 많은 사람은 오동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금이나 은으로 무늬를 넣은 장죽을 쓰기도 하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