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성기호勢成騎虎 -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기세,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짐
세성기호(勢成騎虎) -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기세,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짐
형세 세(力/11) 이룰 성(戈/3) 말탈 기(馬/8) 범 호(虍/2)
사나운 호랑이의 등에 타게 됐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끝까지 간다 해도 죽은 목숨이다. 이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는 騎虎難下(기호난하) 또는 騎虎之勢(기호지세)라는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南北朝(남북조, 221∼589년)시대 말기 혼란스러울 때 정권을 잡은 楊堅(양견)이 우물쭈물하자 부인 獨孤(독고)씨가 말을 탄 기세라며 황위에 오르도록 부추긴 데서 나왔다. 고려 太祖(태조) 王建(왕건)이 난폭한 弓裔(궁예)의 휘하에 있을 때 역시 神惠(신혜)왕후가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들이라며 이 말을 썼다고 한다.
호랑이를 타고(騎虎) 다니는 기세(勢成)라는 이 말은 똑 같은 의미를 가졌지만 출전은 달리 한다. 東晋(동진, 317~420년)의 3대 成帝(성제) 때 장수 蘇峻(소준)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수도를 압박해오자 江州(강주)자사였던 溫嶠(온교, 嶠는 산길 교)가 군사를 일으켜 荊州(형주)자사인 대장군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을 맹주로 추대하고 토벌에 나섰다. 도간은 歸去來辭(귀거래사)의 시인 陶淵明(도연명)의 증조부로 알려져 있다. 많은 무공이 있었던 도간은 그러나 이 전투에서 고전했다.
도간이 지휘하는 토벌군은 반란군에 밀려 패전을 거듭했고 군량을 공급하는데도 차질이 생겼다. 자신감이 떨어진 도간은 온교를 불러 부대를 철수할 테니 조건이 되면 다시 나서자고 했다. 난감해진 온교가 적은 지략이 없으니 반드시 이길 수 있다며 설득한다. ‘오늘의 상황에서 의로운 뜻을 되돌릴 수 없으니, 이는 사나운 짐승의 등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데 어찌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今之事勢 義無旋踵 騎猛獸安可下哉/ 금지사세 의무선종 기맹수안가하재)?’ 생각을 바꾼 도간은 힘을 합쳐 적을 공격하고 반란 수장 소준의 목을 베었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 온교전에 나온다.
뜻은 같아도 출전은 다른 두 가지 성어 모두 지휘자보다 부하나 부인이 지혜롭게 건의한 데서 난관을 돌파한 점이 닮았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이 어려울 때 결단해야 하는 사람은 고독하다. 밑에서 사정을 잘 알고 바른 길을 건의하면 위에서는 잘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아무도 제지를 못한다면 위나 아래나 낭패를 못 면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