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지맹城下之盟 - 성 밑에서 적군과 맺는 맹약, 적과 맺는 굴욕적 맹약
성하지맹(城下之盟) - 성 밑에서 적군과 맺는 맹약, 적과 맺는 굴욕적 맹약
재 성(土/7) 아래 하(一/2) 갈 지(丿/3) 맹세 맹(皿/8)
전쟁은 평화를 위해서 있다. 그러니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상이다. 孫武(손무)는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다. 非危不戰(비위부전), 위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아야 하지만 부득이하게 싸울 때가 왔다면 존망이 걸려 있으니 이겨야 한다.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있듯이 어떤 속임수를 쓰더라도 이기면 비난받지 않는다. 성을 굳게 지키다 속임수에 빠져 무너지고 성 아래(城下)에서 굴욕적인 맹약(之盟)을 맺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대한 楚(초)나라의 침략을 받은 작은 絞(교)나라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았다. 초군이 도성의 남문까지 육박해 오자 성문을 굳게 닫고 籠城(농성)작전을 펼치며 밖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들어가자 초나라 진중에 屈瑕(굴하)라는 사람이 초군 장수에게 계책을 말했다. 교나라 사람들이 경솔하고 지략이 부족하므로 유인책을 건의했다. 먼저 나무하는 초부들을 병사 호위 없이 보내면 교나라 병사들이 성 밖으로 나와 잡아갈 것이라 했다.
초의 장수가 실행했더니 과연 교나라 군사들이 초부들을 30명이나 붙잡아 갔다. 다음번에는 초의 병사들을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나무하게 했더니 역시 교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나와 산중으로 추격했다. 이때 미리 ‘매복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도성의 북문을 막고 교의 군사들을 크게 쳐부순 다음 성벽 아래에서 맹약을 맺고 돌아갔다(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초인좌기북문 이복제산하 대패지 위성하지맹이환)’. 병사를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木馬(목마)작전으로 성공한 셈이다. ‘左氏傳(좌씨전)’ 桓公(환공) 12년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계략에 넘어간 교나라가 대패하고 성벽 아래에서 맺은 맹약은 굴욕적인 것을 의미하게 됐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오늘날의 외교전에서도 국력의 차이와 지략의 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전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싱가포르의 미국과 북한 정상회담에서도 벼랑 끝 전술을 펼치다 황급히 거둬들이는 등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성벽 아래에 있었던 나라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